원전 생태계 복원과 수출 강화를 내세운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원자력 관련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 운영비는 오히려 130억원 가량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은 현재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운영하며 소아암 치료제 원료 등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가 연구원 예산을 구조조정하면서 의료 분야에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을 보면 원자력연구원 운영을 위한 출연금이 130억원 가량 감액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내년 연구원 예산을 약 160억원 줄였고, 기획재정부가 이를 30억원 가량 다시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원 한해 예산은 6000억~7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정부가 지원하는 비용은 1500억원대 수준이다. 연구원 시설 보수 등의 명목으로 쓰이는 돈이다. 나머지 예산은 연구원이 민간이나 정부에서 연구개발(R&D) 사업을 따내는 것으로 충족된다. 결국 내년 연구원 운영비는 1300억원대로 쪼그라들게 됐다.
원자력연구원은 1959년 원자력 기술을 통한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이다. 현재 연구원장 직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주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원자력 멘토’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7월 첫 공식 행보로 주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을 찾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청취했다. 그런 주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연구원도 정부의 감액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다.
문제는 이번 감액으로 하나로 원자로의 원활한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전에 위치한 하나로는 의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원자로다. 하나로에서 생산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통해 갑상선암 진단·치료제, 소아암 치료제, 간암 치료제, 자궁경부암 치료제 등 수십여종의 방사성 의약품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갑상선암 치료에 쓰이는 물질인 ‘요오드-131’는 하나로가 국내 수요의 70% 가량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설계 수명이 30년인 상업용 원자로와 달리 연구용인 하나로는 설계 수명이 없어 28년 동안 가동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하나로는 최근 1년간 5번이나 가동을 중단했다. 부품 등의 고장으로 지난해 4월, 7월, 11월에 멈춰섰던 하나로는 지난 2월, 5월에도 정지했다. 그러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9월 1일부터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정부가 잦은 고장에도 운영을 멈추지 않는 것은 하나로가 국내 의약품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재 연구원은 하나로 운영비를 정부 출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안전 검사나 개·보수 비용도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내년부터 130억원의 운영비가 줄어들면서 하나로 운영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칫하면 암 치료 의약품 공급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원전 산업 육성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가 원자력연구원 예산 삭감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