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신을 교환하는 등 북러 간 무기 거래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고 미 백악관이 밝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의 강력한 견제로 중국이 주춤하자 러시아가 사실상 통제 불가 상태인 북한을 이용한 무기 수급 경로를 뚫은 셈이다.
미국은 첩보 사안인 서신 내용까지 일부 공개하며 강력한 견제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주변 안보 상황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0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북러 간 무기 협상이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 이후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과 푸틴 대통령이 서한을 교환하고 양자 협력을 강화키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 서한 내용에 대해 “양국이 진행 중인 비밀 협상”이라며 “서한(내용)은 지원을 독려하는 표면적인 수준”이라고 공개했다. 이어 “서한이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진전시키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쇼이구 장관은 지난달 한국전쟁 정전협정일(북한 전승절) 때 북한을 방문했는데, 커비 조정관은 이에 대해 “포탄을 판매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쇼이구 장관 방문 이후 또 다른 러시아 관리들이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 가능성에 대한 후속 논의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며 “이 협상에 이어서 고위급 간 논의가 향후 몇 달간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협상을 통해 러시아가 상당한 양과 다양한 종류의 탄약을 북한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며 “거래에는 러시아 방위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자재 제공도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러 간 협상 중인 무기 종류에 대해선 “다양한 유형이며 한 가지 확실한 건 포탄”이라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북한이 지난해 러시아 용병기업 와그너 그룹에 무기를 제공한 이후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추가 탄약 확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러 간 무기 거래는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직접 위반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이 러시아군에 군사적 지원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한 약속대로 러시아와 무기 거래 협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번 대응은 북러 간 거래 과정을 내밀히 파악하고 있음을 공개하며 양측을 강도 높게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정보망 타격 우려까지 감내하며 적국의 은밀한 서신 교환과 고위급 인사 교류 등 핵심 첩보 사안을 공개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에도 북한의 와그너 그룹 무기 제공 사실을 밝히며 위성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의 무기 공급처로 떠오르면 우크라이나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등 서방 동맹은 올 초 중국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며 중국의 발을 묶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한은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추가 제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커비 조정관은 이번 정보 소스를 보호하기 위해 출처 등에 관해선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양한 정보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면밀하게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북한 등에서 군사 장비를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알아내고 공개하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확대될 경우 한반도 안보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핵실험 도발을 강행해도 러시아의 보호로 유엔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이 진전되면 러시아의 무기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엔 주재 한·미·일 3국 대사는 이날 유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일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팔 경우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방어해주고 나아가 허용해줄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핵무기 확산 추구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