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정부 예산안을 올해(638조7000억원)보다 18조원(2.8%) 늘어난 656조원9000원 규모로 확정했다.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19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불경기가 부른 세수 감소를 감안해 씀씀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다만 현안인 취약 계층 지원과 중장기 과제인 저출산 대응 등에 대해선 예산을 더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2024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사전브리핑에서 “정부는 지난해 첫 예산에서 건전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했지만 1000조원 이상 누적된 국가채무 뿐 아니라 올해와 내년 세수 상황도 녹록치 않다”며 “건전재정의 가치는 한시도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맸다”고 말했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5년만에 400조원 넘게 불어나며 지난해 1000조원을 넘어섰다. 빚은 늘어났는데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조원 줄어든 178조5000억원에 그쳤다.
내년 예산 증가 폭은 문재인정부 연평균 증가율(8.7%)의 30% 수준이자, 현 정부가 처음 짠 올해 예산 지출 증가율(5.1%)보다도 2.3%포인트 낮다. 윤석열정부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악화된 나라살림을 정상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연평균 예산 증가율을 3.6%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정부는 빚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취약계층 지원을 늘리고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예산 초점을 맞췄다. 올해(24조원)에 이어 내년에도 23조 원 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는 지출 구조조정 규모가 10조 원 안팎이었던 예년 대비 배가 넘는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눈먼 돈’으로 지적했던 국가 보조금(-4조원과)과 연구개발(R&D) 예산(-7조원) 등이 대폭 삭감됐다.
삭감한 예산은 ‘따뜻한 동행을 위한 약자 복지’라는 기조 아래 쓰이게 된다. 내년 사회복지 분야 지출액은 올해 대비 8.7% 늘렸다. 총 지출 증가율(2.8%)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를 13만원 가량 올리고 병사 월급도 올해 130만원에서 내년 165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저출산 대응 예산도 대폭 늘린다. 육아휴직 지원 기간을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고, 신생아 특별 공공분양을 연 3만 가구 수준씩 신규 공급한다. 신생아 특례 구입자금, 전세자금 대출 소득요건도 기존보다 배 수준으로 상향해 수급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
허리띠를 옥죄는 조치를 단행했지만 세수 감소 영향으로 국가 재정은 좀 더 취약해졌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1.0%로 올해(50.4%)보다 0.6%포인트 올라간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도 올해 2.6%에서 내년 3.9%로 늘어나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 기준(3.0%)를 넘어서게 된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 이행과 각종 서민정책 시행을 위해 총 지출 증가율을 더 낮출 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경제성장률이 1~2%대로 주저앉은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R&D 예산을 줄인 것을 두고 향후 국회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내년 예산안은 다음 달 1일 국회에 제출된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