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광주시가 조성 중인 ‘정율성 공원’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공산당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28일 지적했다. 박 장관은 그러면서 장관직을 걸고 공원 건립을 철회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강기정 광주시장은 “철 지난 매카시즘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계획대로 공원을 짓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장관은 이날 호남 학도병 성지인 전남 순천역을 찾아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며 “공산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수많은 애국 영령 원한과 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소중한 예산은 단 1원도 대한민국 가치에 반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광주시는 예산 48억원을 들여 내년 초 완공을 목표로 정율성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정율성은 양림동 태생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음악가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대합창’ 중 ‘팔로군행진곡’이 중국 ‘인민해방군가’로 비준받았다. 광복 이후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했다.
박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장관이 대한민국 적을 기념하는 사업을 막지 못한다면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있을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장관은 광주시를 향해 “지방자치단체 자율성이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 뜻을 정면으로 배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어 “수많은 광주 시민, 호남 주민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지자체장이 강행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향후 법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박 장관은 “법적인 문제도 여러 방면에서 검토 중”이라며 “중앙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검토(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훈부는 공원 조성을 저지하기 위해 법률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부는 헌법소원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자치법 184조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장은 지자체 사무에 대해 조언이나 권고, 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활동한 항일무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단장을 맡았던 김원봉 선생 기념공원이 경남 밀양에 조성됐다는 지적에 “의열단 기념관이고 그중에 김원봉이 살짝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원봉 선생에게) ‘대한민국 독립 최고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문재인 전 대통령 역사관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 시장은 정율성을 역대 정부 대중국 외교 중요한 매개였다고 평가하며 사업철회는 없다고 못 박았다.
강 시장은 이날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차담회를 갖고 “(정율성 기념사업) 시작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8년으로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원회에서 정 선생 부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해 한·중 우호 상징으로 삼았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율성 관련 사업을 먼저 추진한 것은 광주시가 아닌 역대 중앙정부였다는 것이다.
강 시장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3년 문체부에서 한·중 수교 1주년 기념으로 ‘정율성 음악회’를 개최했으며 1996년에는 문체부 주관 정율성 작품 발표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강시장은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참석한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는 정율성이 작곡한 곡이 연주됐다고 부연했다.
강 시장은 그러면서 “정율성 선생이 우리 정부 대중국 외교 중요한 매개였음은 분명하다”며 “한·중 관계가 좋을 때 장려하던 사업을 그 관계가 달라졌다고 백안시하는 것은 행정 연속성과 업무수행 기준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박 장관을 박승춘 전 보훈처장에 빗대며 날을 세웠다.
강 시장은 “박 전 처장은 광주시민이 (5·18 기념식에서) 마음을 담아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하고, 이념의 잣대로 5·18을 묶고, 광주를 고립시키려 했다”며 “당시에도 철 지난 매카시즘은 통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고 쏘아붙였다.
강 시장은 이어 “보훈단체와 보수단체를 부추겨 광주를 다시 이념의 잣대로 고립시키려는 행위를 중단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 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은 광주시가 책임을 지고 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