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자가 뒤차량의 통행을 막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또 짧게 운전대를 잡은 것이라면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법 형사항소1-1부(재판장 심현욱)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죄를 유지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8월 밤 지인 등과 술자리를 가진 뒤 술을 마시지 않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운전 중 다투면서 변수가 생겼다. 흥분한 B씨는 울산의 한 좁은 도로에 차를 세웠다.
해당 지점은 차량 1대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도로였기 때문에 A씨 차량이 졸지에 뒤차들을 막아 세운 꼴이 됐다.
뒤에서 경적이 여러 차례 울렸고, A씨는 B씨에게 일단 차량을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B씨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A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20% 만취 상태에서 차를 10m가량 직접 몰아 큰길로 빠져나간 뒤 도로변에 주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A씨가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위급하고 곤란한 경우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긴급피난)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도로는 주정차가 금지된 데다 야간이었고 여자친구 B씨가 운전을 거부한 상황에서 차량을 그대로 두기엔 정체가 이어지고 사고 위험도 컸다는 것이다.
또 A씨가 매우 짧은 거리를 운전해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바로 차에서 내린 점을 참작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거듭 부탁하지 않았고,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았다며 항소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좁은 도로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툰 뒤 흥분한 상태에서 운전을 거부하는 여자친구 B씨가 다시 운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직접 짧은 거리만 이동시키고 바로 차에서 내린 것을 볼 때 운전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이 건과 별도로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음주 측정을 하려고 하자 측정기를 내리치고 경찰관을 밀쳐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