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이 돌연 운전대 놨다…남친 ‘10m 음주운전’ 무죄

입력 2023-08-27 09:44 수정 2023-08-27 12:53
경찰이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음주운전자가 뒤차량의 통행을 막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또 짧게 운전대를 잡은 것이라면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법 형사항소1-1부(재판장 심현욱)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죄를 유지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8월 밤 지인 등과 술자리를 가진 뒤 술을 마시지 않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운전 중 다투면서 변수가 생겼다. 흥분한 B씨는 울산의 한 좁은 도로에 차를 세웠다.

해당 지점은 차량 1대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도로였기 때문에 A씨 차량이 졸지에 뒤차들을 막아 세운 꼴이 됐다.

뒤에서 경적이 여러 차례 울렸고, A씨는 B씨에게 일단 차량을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B씨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A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20% 만취 상태에서 차를 10m가량 직접 몰아 큰길로 빠져나간 뒤 도로변에 주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A씨가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위급하고 곤란한 경우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긴급피난)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도로는 주정차가 금지된 데다 야간이었고 여자친구 B씨가 운전을 거부한 상황에서 차량을 그대로 두기엔 정체가 이어지고 사고 위험도 컸다는 것이다.

또 A씨가 매우 짧은 거리를 운전해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바로 차에서 내린 점을 참작했다.

경찰이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모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거듭 부탁하지 않았고,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았다며 항소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좁은 도로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툰 뒤 흥분한 상태에서 운전을 거부하는 여자친구 B씨가 다시 운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직접 짧은 거리만 이동시키고 바로 차에서 내린 것을 볼 때 운전할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이 건과 별도로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음주 측정을 하려고 하자 측정기를 내리치고 경찰관을 밀쳐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