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도, 생업도 잃어… 日정부 향한 후쿠시마의 묵은 원망

입력 2023-08-25 16:45 수정 2023-08-25 18:19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항에서 24일 어업 활동을 하는 어민들의 모습.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50㎞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이날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송태화 기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가운데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의 전면 수입 금지를 선언하면서 어민들의 피해가 현실화했다. 일본 정부는 풍평(소문) 피해가 없도록 예방과 보상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보상안은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생계 위기 현실화, 지역 소멸 우려도

후쿠시마 원전 앞바다에는 25일 전날 210t의 2.3배 수준인 약 460t의 오염수가 방류됐다. 어민들의 불안과 우려는 커지고 있다. 중국과 홍콩이 전날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르면 중국과 홍콩은 지난해 일본 전체 수산물 수출액 3873억엔(3조5153억원)의 약 42%인 1626억엔(1조4758억원)을 수입했다.

노자키 데츠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회장은 국민일보에 “후쿠시마 브랜드를, 어민을 지켜내고 싶다. 이곳을 떠나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많은 어민이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었던 어촌을 떠났다고 했다.

실제로 이와키시의 어협 조합원은 2011년 원전 사고 이전 456명에서 올해 3월에는 285명까지 감소했다. 그마저도 60대 이상 고령층이 대다수다. 후쿠시마 해안에서 잡히는 수산물은 ‘조반모노(常磐もの)’로 불리며 국민적 인기를 끌었으나 이제는 꺼림칙함의 대상이 됐다.

후쿠시마현 내 어협은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가보다 엄격한 기준을 내세워 독자 검사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24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항의 수산시장에 진열된 수산물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50㎞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이날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송태화 기자

후쿠시마에서는 생계 위협을 넘어 지역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사회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일극 주의와 저출생·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곳들이 많은데 후쿠시마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원전 사고 이후 지금까지도 도미오카 지역 등 원전 지점에서 약 5㎞ 내외는 ‘귀환곤란지역’으로 지정돼 수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뺏기고 떠났다. 이제는 12년간 지속적인 피해를 시달리며 간신히 버텨온 어민들조차 오염수 방류로 생계 위기에 직면했다.

어촌도, 농촌도 日 정부 향한 불신 강해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지속적인 피해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정부와 도쿄전력에 불신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며 주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 현지 어업협동조합과 오염수 처리 방식을 논의하며 “관계자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어민들에게 최대한 설득을 구했지만 결국 완전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방류를 강행했다.

보상금 성격으로 300억엔(약 270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지만 ‘기준’을 분명히 제시한 게 아니라서 현지에서는 실질적인 피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전날 후쿠시마현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인 이와키시 오나하마항에서 만난 한 어민은 기시다 정부 보상책에 만족하냐고 묻는 말에 “아직은 1엔도 나온 게 없어서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받은 사람 못 봤다”고 토로했다.

주무부처 수장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어민들과의 만남에서 “방류 전이라도 지원하겠다”고 분명한 보상을 약속했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 풍조가 만연한 건 어촌뿐 아니라 농촌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표 곡창 지대인 후쿠시마는 수산물뿐만 아니라 쌀, 복숭아 등 농산물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원전 사고 후 대지가 오염됐다는 우려가 확산하며 지역 사회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원전 인근 평야 지대인 옷토자와 쪽에 살다가 원전 사고 뒤 이와키로 이주한 후지이 아키오(64)씨는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한 혐오감은 어민보다 농민이 훨씬 강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2011년 당시 도쿄전력이 토지 오염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일부 보상을 해주긴 했지만 이미 모든 걸 잃은 그들이 남은 삶을 꾸려가기란 너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24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오나하마항에 갓 들어온 수산물들.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50㎞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이날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송태화 기자

뿔난 日 정부 “수입 규제 당장 중지” 촉구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료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을 겨냥해 “수질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 발표하겠다”며 “과학적 근거 없는 수입 규제를 즉각 중지할 것을 정부를 대표해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본 환경성은 향후 3개월간 원전 반경 50㎞ 안 해역 11곳의 수질 데이터를 집계해 매주 공표한다고 밝혔다. 이날 착수한 조사의 결과는 오는 27일에 나올 전망이다.

만일 원전으로부터 3㎞ 이내 지점에서 1L당 700베크렐(㏃), 이보다 먼 지점에서 1L당 30㏃을 각각 초과하는 삼중수소 수치가 확인되면 원자력규제청을 통해 도쿄전력에 연락할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도쿄전력은 정부보다 기준을 높여 원전 반경 3㎞ 이내의 해역 10곳에서 매일 해수 표본을 확보해 분석 결과를 앞으로 한 달간 매일 알리기로 했다. 이날 집계된 방류 개시 이후 첫 표본 측정 결과는 저녁 무렵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