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 인수전이 중견기업인 하림그룹, 동원그룹, LX그룹과 세계 5위 해운사인 독일 하팍로이드의 4파전으로 좁혀졌다. 대기업의 깜짝 참전은 없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해운산업 재건에 시너지를 내기에 비전문 해운기업들이 참여한 데다 자금력도 약하다는 점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매각 주관사인 삼성증권이 전날까지 진행한 HMM 매각 예비입찰에 동원·LX·하림과 하팍로이드가 인수의향을 밝혔다. HMM 인수전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SM그룹은 참가를 포기했다. 시장에서 거론되던 일부 대기업도 입찰에 응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해운산업의 대변혁기를 앞둔 상황에서 HMM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이 얼마만큼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특수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본격 침체 국면에 진입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최대 선사인 HMM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다. 최근 세계 1~2위 해운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가 해운동맹 ‘2M’을 2025년 1월부터 해체하기로 하면서 경쟁이 가열화하는 추세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이미 내륙기지 확보, 컨테이너선 투자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HMM 인수전이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만한 역량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해운업계 한 전문가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회사가 인수해 HMM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 적절한 회사가 보이지 않는다”며 “해운산업의 대변혁기를 앞두고 비전문 해운기업이 인수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인수전에 참가 기업 면면을 보면 이렇다. 동원과 LX는 ‘물류 사업’ 분야를 영위하고 있다. 하림은 중형 해운사 팬오션을 보유 중인데, 사업 구조가 벌크선 위주다. 인수전 참가 기업 모두 HMM을 인수하면 각사가 일종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HMM 자체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이 기업들의 자금력도 부정적 시선을 키운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모두 HMM보다 자산 규모가 작다. 기업 중 일부는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여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해운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HMM이 보유한 현금을 사업 확장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력이 풍부한 회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HMM은 10조5000억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 중이다.
자금력과 산업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 가장 앞선 하팍로이드는 독일 기업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HMM이 국내 최대 선사인 점을 고려하면 하팍로이드로 매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채권자인 KDB산업은행의 강석훈 회장은 “국적 선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었다.
정부가 HMM을 지원한 목적대로 ‘해운 산업의 재건’을 위한 매각을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해운이 국가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매각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MM 매각은 2개월간 심사 이후 본입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주식 매매 계약(SPA) 순으로 진행된다. 매각 측이 예비입찰 참여 기업 중 적격 후보가 없다고 판단하면 매각 절차를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