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성폭행‧살인 피해자 A씨의 발인이 엄수된 22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웃는 얼굴은 영정사진 속 A씨가 유일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부친 대신 상주를 맡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A씨 오빠도, 유족을 대신해 애써 밝게 직접 조문객을 맞이하던 A씨 친구도 침통한 표정으로 A씨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떠나는 A씨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유족과 지인 50여명이 빈소를 찾았다. 이 중에는 A씨의 제자였던 학생 6명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 A씨와 사제 연을 맺었던 학생들은 고등학생이 돼 등교 전 빈소에 들렀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빈소로 들어서자 유족들은 A씨 이름을 부르짖으며 “네가 가르친 아이들이 저렇게 컸다”고 탄식했다. A씨 어머니는 “너희가 제일 보고 싶었다”며 한 명씩 끌어안은 뒤 “훌륭한 사람이 돼서 나중에 꼭 만나자”고 말했다. 학생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빈소를 나오자 감정이 북받친 듯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발인제가 시작되자 A씨 영정사진 앞으로 유족들이 모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유족의 외침이 빈소 안에 메아리쳤다. A씨 어머니가 “내 새끼한테 왜 하필…왜 하필…”이라며 오열하자 지켜보던 조문객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바닥에 엎드린 유족의 어깨는 연신 들썩였다.
발인이 끝난 뒤 A씨는 유족 품에 안겨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화장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한 고별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A씨 관 위로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유족과 지인의 수많은 손이 얹어졌다. 부축을 받으며 온 A씨 어머니는 관을 보고 곧바로 주저앉았다. 화장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유족과 지인들은 A씨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발인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은 전날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A씨가 다니던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이대산씨는 사건 일주일 전 줄넘기하는 A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씨는 “우리 체육관에서도 주먹이 가장 셌고 운동도 잘했다. 같은 체급의 남자도 이길 수 있을 실력이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A씨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만난 제자들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빈소에 남았다. 김채민(20)씨는 A씨가 9년 전 일인데도 자신을 칭찬하며 준 ‘으쓱 카드’를 잊지 못했다. 평소 학생들에게 싫은 말을 못 하던 A씨는 잘못해도 꾸지람 대신 ‘머쓱 카드’를 건넸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 선생님을 만나면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했다고, 덕분에 잘 컸다고 말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머니와 함께 빈소를 찾은 이모(15)양은 A씨의 SNS 계정 속 사진을 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40여장의 사진 중 A씨가 학생과 함께 찍은 게 대부분이다. 3년 전 A씨를 만났던 이양은 “선생님과 더 있고 싶다”며 어머니에게 졸업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유족 중에선 피의자 최모(30)씨를 향한 원망이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A씨 작은아버지는 “우리는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우울증이라든지, 계획하지 않았다든지 떠들더라”며 “반성은 없고 형량만 깎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