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빌라에서 이웃집 모녀에게 정신과 약물을 섞은 도라지 물을 마시게 한 뒤 살해한 5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형사2-3부(부장판사 김대현)는 16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김대현 부장판사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객관적인 증거가 여럿 있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약물을 먹이고 살해한 점이 인정된다. 피고인 외 다른 사람의 범행 가능성을 살펴봐도 그러한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12일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빌라에서 향정신성의약품과 도라지청을 섞어 만든 물을 이웃집 모녀에게 마시게 한 뒤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이웃 주민 40대 B씨는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고, 10대 딸 C양은 시신 일부가 불에 탄 채로 발견됐다.
1심에서 인정한 범죄사실을 보면 A씨는 사건 당일 자신이 처방받아 복용하던 신경정신과 약물을 섞은 도라지물을 들고 B씨의 집을 찾아갔다. B씨 모녀와 아들 D군에게 마시게 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모녀가 깨어나자 B씨를 흉기로 찌른 뒤 목 졸라 살해하고, C양도 둔기와 휴대전화 등으로 때린 뒤 질식해 숨지게 했다.
나중에 깨어난 D군은 “도라지물을 마신 뒤 15시간이나 잠이 들었고, 눈 떠보니 어머니와 누나가 살해됐다”고 증언했다. A씨는 재판 내내 D군이 범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15년 7월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A씨가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중 B씨의 귀금속 등 금품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4월 “A씨가 반성하지 않고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부인하고 책임을 벗어날 궁리에만 몰두했다”며 “다시는 사회 안전을 위협할 수 없도록 A씨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함이 타당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무기징역 대신 사형을 선고해 달라며 항소한 바 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