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빠진 중국이 단기 정책금리를 전격 인하하며 돈 풀기에 나섰다. 소비, 투자,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악화된 상황에서 111조원대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은 또 지난 4월부터 석달 연속 20% 이상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를 찍고 있는 청년실업률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5일 단기 정책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를 1.8%로 0.1% 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또 1년 만기 중기 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 금리를 2.5%로 0.15% 포인트 낮췄다. 이를 통해 시장에 풀리는 유동성 규모는 6050억 위안(111조원)으로 추산된다. 인민은행은 지난 6월 MLF 금리를 2.75%에서 2.65%로 인하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또 다시 하향 조정했다.
MLF는 인민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빌려줄 때 적용되는 금리로 기준금리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오는 20일 발표되는 대출우대금리(LPR)도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줄곧 동결했던 LPR을 10개월 만인 지난 6월 1년 만기는 3.55%, 5년 만기는 4.20%로 각각 0.1% 포인트 인하했다.
7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도 둔화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소매판매가 지난해 동기 대비 2.5%, 산업생산은 3.7% 증가했다고 밝혔다. 내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소매판매 증가폭은 시장 전망치인 4.5%를 밑돌았고 지난 4월(18.4%), 6월(3.1%)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졌다. 산업생산 증가폭 역시 4월(5.6%), 6월(4.4%)에 비해 낮아졌다. 제조업 경기 동향을 반영하는 산업생산은 고용, 평균소득의 선행 지표로 활용된다.
특히 중국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 경기는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1~7월 부동산 개발투자는 지난해 동기보다 8.5% 줄었고 전국의 누적 분양 주택 판매 면적과 판매액도 각각 6.5%, 1.5% 떨어졌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촉발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다른 부동산 업체와 금융권으로 확산해 대형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날 실업률을 발표하면서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16~24세 청년실업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푸링후이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8월부터 청년 및 기타 연령대 실업률 발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 기준 청년은 9600만명이고 이중 6500만명이 재학생”이라며 “졸업 전에 일자리를 찾는 학생을 고용 조사 통계에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각계 의견이 엇갈리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8년 10.1%였던 청년실업률은 지난 4월 처음 20%를 넘은 뒤 5월 20.8%, 6월 21.3%로 매달 최고치를 찍었다. 올여름 대학을 졸업한 1158만명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 7월 실업률은 더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중국 경제의 불안이 미국 경제에 리스크(위험 요인)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14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둔화는 아시아 국가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미국에도 어느 정도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 경제를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