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을 지닌 소년의 마라톤 도전기를 그린 영화 ‘말아톤’(2005)의 정윤철 감독이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태와 관련, 주씨 가족을 향한 ‘멸문지화급’ 비난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나는 ‘말아톤’ 감독으로서 특정 웹툰 작가에 대한 멸문지화(가문이 사라지는 재앙)급의 과도한 빌런 만들기를 멈추고 그의 아들을 포함한 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집 근처에서 편안히 등교할 수 있도록 특수학교를 대폭 증설하고 예산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언론과 여론이 힘을 쏟길 바란다”고 적었다.
아울러 “특수학교를 세우려 할 때마다 집값 떨어진다고 길길이 뛰며, 장애를 지닌 아이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빌도록 만드는 고질적인 ‘님비(Not in my back yard·지역 이기주의) 현상’을 재고하는 계기 또한 되길 빈다”고 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주 작가의 별명인 ‘파괴왕’처럼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고양을 위해 쌓아온 그동안의 사회적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 우려하면서 “이 땅의 수많은 ‘초원이’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초원이’는 영화 ‘말아톤’ 속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다.
끝으로 “선생님들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언론은 항상 기저에 깔린 구조적 모순과 시스템의 진짜 빌런을 추적해야 할 임무가 있다”며 “을과 을의 싸움이 지닌 무의미함과 비극성은 영화 ‘기생충’에서 충분히 봤다”고 덧붙였다.
앞서 주씨는 자신의 발달 장애를 지닌 아들을 가르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주씨는 아들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켰는데 녹음에는 “단순 훈육이라 보기 힘든 상황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사와의 대화를 무단 녹음한 주씨의 행동이 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명백한 진상 규명이 되기 전까지는 선생님들에 대한 무분별한 직위해제를 하지 않겠다”면서 직위해제됐던 특수학급 교사를 지난 1일 자로 복직시킨 상태다.
주씨는 2일 추가 입장문을 통해 “직위해제 조치와 이후 재판 결과에 따라 교사의 삶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재판 중인 해당 교사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다만 주씨는 “며칠 동안 저희 아이의 신상이나 증상들이 무차별적으로 여과 없이 공개되고, 열 살짜리 자폐 아이를 성에 매몰된 본능에 따른 행위를 하는 동물처럼 묘사하는 식의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부모로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저에 대한 자극적 보도는 감내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멈춰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