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고집스러운, 완고한 아이

입력 2023-08-02 09:50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J는 너무 고지식하고 완고하다. 한번 정해진 규칙은 때와 장소, 상황과 무관하게 꼭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친구들이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지적하고 선생님에게 이르다 보니 친구들이 싫어하고 따돌린다. 친구들 입장에서 자신의 이런 행동이 어떻게 느껴질지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하지 못한다. 자기 생각이 확고해 조언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모도 J를 설득할 수 없으니 좌절감이 들 정도다. 어떤 때는 너무 화가 나 ‘고집불통’이라며 야단치게 된다.

J와 같은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고집스러운’ ‘완고한’ 성격으로 간주되곤 한다. 타고난 기질적으로 개방성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인지적 유연성 부족은 창의력 부족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어떤 규칙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창의적 사고를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반가운 것은 이런 특성도 훈련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연구자가 인지적 유연성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의미 있는 결과가 입증됐다. 언어 발달 과정을 응용한 것이다. 언어가 발달할 때는 반대-유사-비교 등의 과정을 거친다. 즉, ‘좋다’를 배우면 ‘싫다’ ‘더 좋다’ ‘더 싫다’ 등으로 거미줄처럼 확장되는 것이다. 이런 확장 속도가 빠르면 언어도 빠르게 늘고 언어를 통한 사고력도 발달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사고의 확장을 속도감 있게 하도록 연습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지우개를 갖고 있고 당신은 연필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라면, 당신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나는 지우개가 있고 당신은 연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나는 책을 갖고 있었고 당신은 공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오늘이라면, 그리고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라면, 오늘 여기에 당신은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이런 것들을 얼마나 빨리 대답할 수 있나 연습한다. 시간과 공간,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관점을 이동해 보는 인지적 유연성 질문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게임도 해 보자.

운전하고 있다면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이렇게 물어보자. “빨간색이 녹색이고 녹색이 빨간색이라면, 지금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출발이요.”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면 누가 운전할까.” “제가요.”

“주름진 것이 울퉁불퉁한 것이고 평탄한 것이 그 반대라면, 어느 길을 택할까. 평탄한 길일까, 아니면 주름진 길일까.” “평탄한 길이요.”

‘초록 불이 켜지면’ 이렇게 묻는다. “빨간색이 초록색이고 초록색이 빨간색이고 앞이 뒤, 뒤가 앞이라면 이제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출발이요, 빨간불이 뒤에 있어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더 빨리 반응하고 빨리 실력이 는다.

생각의 틀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즉 창의성을 높이는 게임도 해보자. 가족이 모여 하나의 물건을 선택한 후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말해보는 게임이다. 머리핀을 선택했다면 30초 동안 이것의 용도로 가능한 것을 모두 말해본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생각했는지 시합해 본다면 재미있을 거다. 예를 들어, 머리핀의 용도로 귀고리, 빨래집게, 구둣주걱, 책갈피 등등을 들 수 있다. 의외의 것을 새롭게 생각해 낸다면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연습을 반복하며 J는 차츰 좋아졌다. 규칙이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친구들과 사이도 나아지고 자기 생각만 옳은 게 아님도 깨달았다. 고집스러움에서 벗어나 남의 말도 부드럽게 받아들이면서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는 힘도 생겨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걸 알아가면서….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