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대기업 총수 ‘솜방망이 처벌’ 낳은 과징금 규정 손보겠다더니…2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공정위

입력 2023-07-25 11:59 수정 2023-07-25 15:46
공정거래위원회 외부전경.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는 2년 전 최태원 SK 그룹 회장의 사업기회 유용 혐의를 대부분 인용하고도 과징금 16억원을 부과하는 데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사업기회가 주식취득 기회일 경우 위반금액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었다며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공정위는 용역 연구조차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앞서 SK는 2017년 반도체 소재업체인 실트론의 주식 70.6%를 취득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나머지 주식 29.4%를 취득할 기회는 최 회장 개인에게 양도했다. 인수 후 실트론의 기업 가치는 이전의 4배 가깝게 상승했다. 공정위의 계산에 따르면 2020년 말 최 회장이 보유한 실트론 주식의 가치는 3년 전에 비해 1967억원이나 늘어나 있었다.

2021년 12월 공정위는 SK가 실트론의 가치 상승을 확신하고도 주식 취득 기회를 포기해 총수의 사익 편취를 도왔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막상 최 회장과 SK가 받은 제재는 각각 과징금 8억원이라는 턱없이 가벼운 제재가 전부였다. 공정위가 미실현 이익인 보유 주식에 대해 구체적인 법위반금액을 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법인이 아닌 자연인이다 보니 매출액을 근거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시 공정위는 “최 회장이 취득한 이익과 과징금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억지력 있는 과징금이 산정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과징금 제도 개선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연구 용역을 공고했지만 충분한 응찰자가 나오지 않아 용역이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사 이동의 여파로 개선 과제가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징금 제도 개선 과제는) 내부 검토만 일부 진행되고 뚜렷한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전방위로 행동 반경을 넓힌 공정위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