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에서 택배를 배송하던 60대 택배기사가 심장 질환으로 쓰러지자 아파트 입주민들이 “택배기사님도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라며 성금을 모금해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아파트를 담당하는 한진택배 소속 기사 정순용(68)씨는 택배 업무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습니다.
다행히 함께 일하던 아내 주홍자(64)씨가 있어 응급실로 간 정씨는 급히 심장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심장 관련 시술을 두 차례 받은 전력이 있는 정씨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지만 매일 신선식품을 배송하는 업무를 미룰 수 없어 일을 나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 정씨가 수술을 받는 동안 아내 주씨는 택배 배송을 기다리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일일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메시지에는 “안녕하세요. 택배기사입니다. 오늘 배송 중 저희 아저씨가 심장이 안 좋다고 해서 응급실에 왔습니다. 지금 수술 중입니다. 부득이 오늘 배송은 못 하게 됐습니다. 병이 낫는 대로 배송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런 주씨의 문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아파트의 한 입주민이 입주민 단체 채팅방에 정씨가 쓰러졌다는 소식과 함께 메시지 캡처본을 공유했고, 이에 “마음이 안 좋네요. 택배기사 부부가 매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배송하시던데…” 등의 안타까운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사고 이틀 후인 지난 19일 “병원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모금을 진행하려고 한다”는 공지를 이 채팅방에 올렸고, 입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까지 총 107세대가 모금에 참여해 단숨에 248만원이 모였습니다. 목표액이 빨리 달성돼 애초 27일까지 진행하려 했던 모금은 조기 종료됐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2일 입주민들의 편지와 성금을 정씨에게 전달했습니다.
편지에는 “저희 입주민들에게 기사님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조금씩 성의를 모았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기사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택배기사 정씨는 2년 전 배송 일을 시작했습니다. 정씨 건강이 악화하면서 지난해부터는 아내 주씨가 정씨를 도와 함께 일해왔다고 합니다.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아파트를 비롯해 6곳 택배를 담당하던 이들은 하루만 일을 멈춰도 생계가 어려울 정도였던 터라,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된 정씨 병원비를 놓고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아파트 주민들의 선의는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주씨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저희가 살면서 도움받기는 동사무소, 정부, 코로나 지원금이 다였는데 이렇게 의도 없는 도움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어 “입주민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라면서 “남편(정씨)은 조금씩 회복돼 오늘부터 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건강하게 업무에 임해서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 싶다”고 거듭 감사를 전했습니다.
이번 일은 정씨 부부뿐 아니라 입주민들 스스로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용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택배기사님이 평소에도 늦으면 늦는다, 안 늦으면 안 늦는다 등 배송 관련 문자를 매번 남기실 만큼 꼼꼼하신 분”이라며 “이번에도 아파서 배송을 못 한다고 문자를 남겨주셔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입주민들이 이렇게 한뜻으로 모금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습니다.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아파트는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주민들도 30~40대 젊은 층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1년 남짓 된 이 아파트에서 기부가 진행된 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3월 해당 아파트 경비원이 주차 단속을 하던 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자, 단지 내 보안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디캠’을 사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주민 40명이 참여해 약 70만원의 성금이 모였고, 이 돈으로 산 보디캠 3대가 경비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정씨 부부와 쌍용더플래티넘오목천역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는 택배 배송방식이나 분실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한 시대에 단비처럼 느껴집니다. 자신들이 겪을 작은 불편에 대한 불만 대신 어려움에 빠진 택배 기사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한 입주민들의 행동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나 약속한 배송을 지키려 했던 정씨 부부의 친절과 성실함, 그리고 이를 느끼고 소중히 여길 수 있었던 입주민들의 마음이 만났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