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 때만 ‘반짝’ 논란…박준식 위원장 “제도 개선 노력, 너무 지체됐다”

입력 2023-07-21 08:00 수정 2023-07-21 08:00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왼쪽)과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지난 1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4차 전원회의가 정회된 뒤 속개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은 9860원, 올해(9620원)보다 2.5% 오른 금액이다. 역대 최장 심의기간인 110일만에 나온 결론이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했다. 18일 오후부터 19일 아침까지 15시간 동안 진행된 마지막 전원회의에서 노사는 요구안 격차를 100원대까지 좁혔음에도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올해를 포함해 다섯번의 최저임금 심의를 이끌었던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매년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심의 동안에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후에도 제도의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한 관련 모니터링과 전문 데이터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19일 박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생긴 지 30년이 넘었지만 사회 경제적 구조가 바뀌었음에도 관련 법 제도를 적절하게 개·보수하려는 노력이 너무 지체돼 왔다”고 말했다.

1987년 발족한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올해까지 총 36회 심의를 진행했지만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한 건 7회에 불과하다. 박 위원장은 “(노사가) 명분이나 이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하는데 올해도 역시 아쉬운 대목이었다”며 “현재의 (최저임금) 의사결정 방식은 사회 세력 간의 갈등과 대결을 심화시키는 구조”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최저임금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예측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금리만큼 영향력이 있는 경제적 요소”라며 “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 자체가 사회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과 지난해 심의에서 2년 연속 같은 산식(formula)을 적용해 공익위원 중재안을 낸 것도 제도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익위원이 자의적인 기준을 만든다는 문제제기가 지속됐고, 올해는 ‘정부 가이드라인’ 논란까지 더해졌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반복해서 수정안을 내도록 유도하고, 10차 수정안에서 노사 격차가 100원대로 줄었을 때 9920원 ‘조정안’을 냈다. 공익위원이 개입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설명이다.

박준식 위원장을 비롯한 사용자, 근로자, 공익위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14차 전원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공익위원은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표결에 들어갈 경우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공익위원의 역할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노사가 주장하는 기초 자료의 신빙성·합리성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 공익위원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무척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위한 전문적인 통계 자료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사회적 의사결정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팩트에 기반해서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시즌이 지나면 또 금세 잊혀지곤 하지만 이제는 최저임금 제도 개선 등의 논의가 진지하게 활성화되길,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