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대인관계 불안을 겪는 여학생

입력 2023-07-20 09:34

15세 여학생 N은 최근 들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불안하다. 친구들을 멀리하고 집에만 있으려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의식된다며 발표도 꺼리고 학교생활에 소극적이다. 엄마도 사춘기에 그랬던 경험이 생각나 더욱 안타깝다.

엄마는 “불안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건 별거 아니야. 그냥 부딪쳐 보면 별거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어. 하지만 피하려고 할수록 점점 심해질 거야”라고 말해 줬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왜일까. 엄마는 올바른 방향으로 충고해 줬지만, N은 엄마가 자신을 ‘그 쉬운 것도 못 하는 못난이’라고 ‘판단’하는 느낌을 받는다. 차츰 엄마에게 마음을 닫는다. 대화 방법을 바꿔 보면 어떨까.

엄마: 네가 두려움과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도 그 나이에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때 얼마나 겁이 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는지 생각이 나는구나. 마치 내가 모자란 사람인 것 같고 남들이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지. 나 자신이 완전히 개조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네가 겪는 일도 이와 같은 것들이니?

N: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요. 온통 절망이고 앞뒤가 꽉꽉 막혔어요.

엄마: 그렇구나. 그게 어떤 느낌인지 좀 더 알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아주 조금이라도. 나는 뭔가를 고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네 마음을 좀 더 알고 이해하고 싶은 거야. 네가 뭘 느끼는지가 엄마에게도 중요하거든.

(N이 상황을 이야기한다)

엄마: 엄마를 믿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네가 얼마나 힘든지, 뭘 느끼는지를 알게 되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구나.

자녀의 어려움과 고통을 지켜보는 건 힘들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감정에 대해 더 개방적으로 표현하고 관찰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도움이나 ‘변화’로 빠르게 넘어가지 말고 그저 궁금함과 관심을 표현하고 들어주면서 딸의 기분에 대해 개방된 질문을 한다. 자녀가 부모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줘야 한다. 감정과 함께 있는 것이 괜찮다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 주자. 부모의 섣부른 충고보다는 ‘모델링’을 해주자. 감정을 피하기보다는 감정과 함께 머무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자녀와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자.

대화의 물꼬는 이런 방식으로 터야 한다. 부모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삶의 지침을 세워줘야 하는 존재로서 역할을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규칙을 세워주고 조언해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고 경직된 태도를 갖게 된다.

하지만 N의 엄마와 같은 조언과 충고는 유효성이 별로 없다. 아이가 엄마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부모는 화가 나거나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부모의 역할은 공감과 규칙 제공이라는 저울의 양측에 미묘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에 어렵다. 그런데 너무 경직된 태도를 갖게 되면 규칙 제공이라는 역할에만 충실하게 되고 N의 엄마처럼 충고자, 조언자의 역할에만 빠져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서로 마음만 멀어지게 된다.

공감과 훈육의 저울은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다. 부모를 모델링하며 자녀가 배우도록 감정을 다루는 태도와 고통을 직면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게 좋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송세영 경제산업담당 부국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