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 러시아에서 팔린 신차 10대 중 4~5대는 중국 브랜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죄다 빠져나온 러시아 시장을 중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19일 유럽기업인협회(AEB)에 따르면 올해 1~6월 러시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판 회사는 현지 브랜드인 ‘라다’다. 14만3618대를 팔았다. 그 뒤를 중국 브랜드가 휩쓸었다. 2위 체리자동차(4만6970대), 3위 하발(3만9852대), 4위 지리자동차(2만5882대), 6위 엑시드(1만5230대), 7위 오모다(1만4555대), 9위 창안자동차(1만1267대)가 전부 중국 회사다. 전체 판매량(35만8921대) 가운데 중국차 비율이 45%를 넘는다.
순위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판매 증가율이다. 장성자동차는 무려 1444%의 증가율(317대→4895대)을 보였다. 체리차 321%, 하발 242%, 지리차 227%, 엑시드 253%, 창안차 412%, 디이자동차 239% 등 대부분이 20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체리차 산하 브랜드인 오모다는 올해 러시아 시장에 새로 진출했다.
중국차가 러시아에서 원래 잘 팔린 게 아니었다는 의미다. 토요타,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르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자 중국차가 이 틈을 노렸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경제 협력 관계를 확대했다. 러시아 컨설팅업체 아프토보스는 “외국 자동차 기업 중 러시아에 남은 건 중국 기업뿐이다.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차가 올 연말엔 점유율을 60%까지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존에 중국 브랜드가 러시아에서 존재감이 미비했기 때문에 국제적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점유율을 늘렸다는 분석도 있다. 마리나 루디악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중국학 교수는 “중국차 회사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레이더 아래로’ 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러시아로 수출한 차량도 급증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은 러시아에 차량 28만7000대를 수출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자동차 수출국 1위에 올랐다. 추이 둥슈 중국승용차시장정협회(CPCA) 사무총장은 “서구 자동차 회사가 러시아에서 후퇴하면서 중국 브랜드가 채울 틈새가 생겼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중국차가 러시아행 선박에 선적됐다”고 말했다.
중국 브랜드는 러시아를 떠난 다른 회사의 공장을 인수해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디이차는 닛산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해 재가동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의 차량을 위탁 생산하던 아브토토르는 베이징자동차그룹(BAIC) 등 중국 브랜드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한편 러시아 시장에서 2위까지 올랐던 기아는 올해 상반기에 자동차 7056대를 팔아 10위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1486대로 14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의 차량은 러시아 딜러사가 병행 수입한 물량만 판매되고 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