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에 따른 지하차도 침수와 산사태 등으로 발생한 사망·실종자만 50명에 달하면서 대한민국 재난관리 시스템의 허술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사고 발생 최소 2시간 전부터 여러차례 위험 신호가 감지됐지만 관계기관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통제 등 안전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재발 방지와 함께 철저한 사전 대비를 공언해왔다. 올해 역시 폭우에 따른 피해가 수차례 예고됐는데도 이를 막지 못하면서 정부의 재난관리에 근본적인 허점이 다시 한번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20년 3명이 숨진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계기로 침수 우려가 있는 지하차도에 원격 자동차단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었는데, 이번에 큰 인명피해가 난 오송 지하차도에는 차단설비가 설치되지 않았다. 충북도는 올해 중 차단설비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3년 전 3명이 숨진 부산 초량1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겪고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재난관리 시스템 또한 이번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다시 불러온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는 차량 통제가 없었고, 안내 전광판 역시 고장난 상태였다. 이번에도 여러 번의 신고에도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원인을 두고 관계기관 간 ‘네 탓 공방’도 벌어지면서 국가 물관리 행정 체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관리 일원화를 통해 환경부가 ‘수질’ 뿐 아니라 ‘수량’ 업무까지 담당하게 됐지만 여전히 물 행정 업무에 여러 부처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이 얽혀 있어 통합물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2018년 수량, 수질, 재해예방 등 대부분의 물관리 기능을 맡은 데 이어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에 남아있던 하천관리 기능까지 모두 환경부로 이관됐다. 그러나 농업용수는 농림축산식품부, 수력발전 시설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는 식으로 여전히 여러 부처에 업무가 분산돼 있다. 특히 하천법은 지난해 환경부 소관으로 변경됐지만, 소하천정비법은 행정안전부 소관으로 남아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소하천 관리 강화를 위한 입법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하천 개발, 이용, 보전 등의 국가사무가 이원화돼 하천 통합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천법상 하천은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으로 분류된다. 환경부는 5대강 본류와 일부 국가하천을 제외한 국가하천 유지·보수도 지자체에 위임하고 있다. 궁평2지하차도 참사 원인이 된 미호강 역시 환경부가 충북도에 관리를 위임했고, 충북도는 다시 청주시에 재위임했다.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북 예천군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재난문자와 대피방송으로만 이뤄진 예방시스템으로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예천군의 경우 15일 새벽시간대 재난문자와 대피방송이 이뤄지면서 미처 산사태를 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사망·실종자로 이어졌다.
현행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기준과 절차가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도 큰 허점으로 작용했다. 산림청이 집중관리하는 산사태 취약지역은 산림보호법에 따라 경사도, 위험도 등 평가지표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봉화군 춘양면 등은 모두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제외됐다.
방재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난 예방보다는 재난 복구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진단하고 예방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18일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의 30%는 예방에, 70%는 복구에 쓰는데 선진국은 70%를 예방, 30%를 복구에 쓴다”며 예방에도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산사태 조기예측시스템 역시 더욱 세밀한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김민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사태재해연구센터장은 “대피를 위한 골든타임 확보가 필요한데 2∼3분 전에 산사태 발생을 정확하게 예측하더라도 대피할 시간이 없다”며 “산 밑 등 산사태 취약 지역 주민들은 30∼40분 전 재난 문자가 지속해 오더라도 귀찮아하지 말고 위험성을 깨닫고 신속히 대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민 박상은 홍성헌 기자 ki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