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이 매출을 올린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디지털세 도입이 미뤄지면서 실제 시행은 빨라도 2026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 다만 138개 국가가 주요 내용을 승인하는 등 제도의 윤곽은 점차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괄적 이행체계(IF)는 10~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15차 총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디지털세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 내용은 IF에 참여하는 143개국 중 138개국이 승인했다. 러시아·벨라루스·스리랑카·캐나다·파키스탄 등 5개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IF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디지털세 도입을 논의하는 국제 회의체다. 현재 논의되는 디지털세는 소재 국가에 과세권을 부여하는 ‘필라 1’과 실효세율이 15%가 되지 않을 경우 추가세액을 부과하는 ‘필라 2(글로벌 최저한세)’로 나뉜다. 이 중 필라 2는 이미 국제 합의를 거쳐 국가별 입법 절차에 들어가 있다. 반면 필라 1은 세부 내용에 대한 국가 간 이견이 크고 과세 대상 기업이 많은 미국의 반발이 예상돼 조속한 도입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성명의 핵심은 필라 1의 발효 시기를 1년간 유예한다는 것이다. 본래 올해 발효가 목표였던 필라 1은 이미 지난 2021년에도 시행이 1년 늦춰진 바 있다. IF는 2025년 발효를 목표로 올해 하반기에 다자조약을 공개·서명하기로 했다. 올해까지였던 국가별 독자 과세 금지 기간도 다자조약 발효 시기 또는 내년 연말까지 1년 연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디지털세가) 2025년 발효할 경우 다자조약 내 규정에 따라 법안은 2026년 또는 2027년 시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의가 진전된 부분도 있었다. IF는 필라 1에 ‘Amount A’를 통해 다국적 기업이 일정한 고정시설 없이도 실제 수익을 올린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근거 조항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국적 기업의 거래가격 산출 표준화·단순화를 돕는 ‘Amount B’도 추가 논의할 예정이다. 필라 2에는 개발도상국 한정으로 이자·사용료 등의 지급금을 9% 미만 저세율로 과세할 경우 추가로 징수할 수 있는 원천지국과세규칙이 들어간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안 시행 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다소 미뤄졌지만, 하반기 서명을 목표로 할 만큼 세부적인 합의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