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마존은 지난 2014년 엔지니어 채용을 목표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채용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AI는 ‘여성’과 관련한 단어가 들어간 이력서에 점수를 낮게 주는 ‘편향성’을 드러냈다. 엔지니어는 남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이 엔지니어 업무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아마존은 AI의 편향성을 수정하려고 했지만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2017년에 프로그램을 폐기했다.
시간이 흘러 생성형 AI 열기가 거세지면서 채용시장에 ‘AI 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들은 최근 대규모 공개채용 대신 필요한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수시채용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고, 인사담당자의 업무 부담이 커졌다. 인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뽑아야 하는데 사람의 힘 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AI를 채용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간 및 노동력 투입의 감소로 채용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 동시에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한다고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인턴을 뽑으면서 AI를 활용해 지원자 23만6000명 중 1.5%에 해당하는 3700명을 선발했다고 알려졌다. 미국 포춘지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의 99%는 AI를 채용에 활용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한국에서도 AI 기반의 비대면 채용 면접 솔루션을 채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LG그룹의 주요 계열사와 현대자동차 등에서 비대면 채용 면접 솔루션인 ‘뷰인터HR’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람인이 기업 560곳을 설문했더니, 5곳 중 3곳은 “AI 채용 솔루션 도입이 실제 채용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AI는 공정한가’라는 물음표가 따라 붙고 있다. 채용에 쓰이는 AI에 공정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는지, AI가 편향성을 담은 의견을 내는 건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확산 중이다. AI가 ‘편향성’이나 ‘환각효과’를 드러내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채용 절차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AI가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평가할지의 방향성을 사람이 설정해야 한다. 이때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지원자 입장에서 나를 평가하는 AI가 어떤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도 공정성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12일 지적했다.
공정성 논란은 한국 만의 일은 아니다.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미국 뉴욕시는 지난 5일(현지시간) 채용 결정에 AI와 자동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걸 규제하는 ‘NYC 144’라는 법률을 도입·시행했다. 챗봇 인터뷰 툴, 이력서 스캐너와 같이 채용·승진 결정을 돕는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해당 도구의 인종·성차별 가능성을 매년 감사해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한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기업에서 채용 절차에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들여다보고 공정성을 확보할 방안의 마련에 돌입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직무능력표준원은 지난달에 ‘채용 분야 인공지능(AI) 활용실태 및 공정성 확보방안 연구’를 발주했다. 연구 제안요청서에 “채용을 둘러싼 대내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공공기관·기업 등에서 채용절차에 AI를 활용 중이나, AI 채용에 대한 실태 파악이 미흡해 공정·투명성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채용절차와 관련된 AI의 기술적 사항을 정리·분석하고, 채용 단계별 AI 활용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국내외 입법례를 살피고, 채용에 AI를 도입하는 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질 계획이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고용부는 AI 채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채용절차법에 AI 활용 관련 내용을 담는 식으로 법 개정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