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막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에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대신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아세안 회의를 계기로 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친 부장의 첫 대면 회담은 불발됐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친 부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왕 위원이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친 부장은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 베트남·스리랑카 외교장관, 러시아 외교차관과 회담을 한 뒤 2주 넘게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화상으로 참석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도 배석하지 않아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주미 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다시 국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한 친 부장은 시 주석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 부장은 부임 이래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외교 활동을 벌였다.
박 장관은 왕 위원이 외교부장이던 지난해 8월 칭다오를 방문해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했다. 또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등 다자 무대에서도 여러 번 만났다. 지금은 왕 위원이 외교부장보다 서열이 높아 박 장관과의 대면 회담이 외교 관례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과거 친분 등을 감안하면 크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과 관련해 박 장관이 한 차례 중국을 방문한 만큼 이번에는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할 차례라는 입장이다.
통상 중국 외교부장이 아세안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면 담당 부부장(차관)을 보내는데, 이번에는 급을 올려 왕 부장이 가는 건 아세안 국가들을 중요한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격전지인 동남아 지역에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