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 “연기로 다양한 인생 경험…가늘고 길게 갈게요”

입력 2023-07-10 15:44 수정 2023-07-10 18:45
배우 라미란. 씨제스 제공

“연기를 통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게 재밌고, 작품에 대해 골치 아프게 고민하진 않는 편이에요.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가도 재밌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닌가요.”

지난달 8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라미란은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라미란은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쁜엄마’에서 홀로 돼지 농장을 운영하며 독한 마음으로 아들 강호(이도현) 검사로 키워내는 영순을 연기했다.

배우 라미란. 씨제스 제공

영순은 뱃속에 아들이 있을 때 억울하게 남편 해식(조진웅)을 잃었다. 남편의 목숨을 앗아간 부패한 정치인 오태수(정웅인)가 계획한 교통사고로 똑똑한 아들 강호마저 7살 지능으로 돌아갔다. 강호를 간호하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이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이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라미란은 “영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을 여러 번 겪었기에 내가 섣불리 이해하거나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사람이 어느 정도로 무너질까, 어느 정도로 독해질까 생각하면서 다가갔다”며 “그렇게 많은 시련이 오면 난 영순보다 훨씬 더 많이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 사진.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드라마가 가난과 불운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모성애를 소재로 삼은만큼 진부한 내용이 될 거란 우려도 있었다. 라미란은 “그럴 수 있겠다는 예상도 했지만 대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야기에 빠져들고 가슴이 내려앉으며 쉴 새 없이 읽었다”며 “이렇게 집중이 되고 다음이 궁금한데 진부한 이야기면 어떤가. 그런 거 하면 안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라미란은 코믹한 연기로 대중에 웃음을 선사해 왔다. 그는 “진중한 역을 맡은 작품들이 다 망했다. 코믹한 이미지에 치우치는 게 싫어 매번 다른 색의 작품들을 해봤는데 잘 안 돼서 사람들이 한 줄 모른다”면서 “‘나쁜 엄마’도 내게서 코미디를 많이 없앤 것이어서 잘 돼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 사진.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애착을 가지는 인물은 누구인지 물었다. 라미란은 “‘응답하라 1988’의 치타 여사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MBTI로 따지면 I(내향)와 E(외향) 성향을 동시에 가진 실제의 내 모습에 가장 근접했다”며 “원래 텐션이 높지 않고 가라앉아 있는 사람이라 코미디를 할 때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다. 나한테서 재밌는 걸 바라는 눈빛들을 볼 때 어떻게 재밌게 해줄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극중 나쁜 엄마를 연기한 라미란은 집에서 어떤 엄마일까. 그는 “아들이 나한테 ‘좋은 엄마’라고 한다. 난 방임형”이라며 “아들이 사이클 선수로 실업팀에 있는데 첫 월급을 받아 얼마 전 팔찌를 사줬다”고 자랑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몇 가지 약속만 지키면 자율에 맡기겠다고 얘기했고,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그 아이의 SNS 팔로워 수를 늘려주고 있다”며 웃었다.

라미란의 목표는 오래도록 배우로 사는 것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고 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