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수출입은행 법정 자본금 한도 상향을 예고하면서 대(對) 폴란드 방산 수출을 둘러싼 기대가 커지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와 올해 한국 무기 구매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수출 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수은의 자본금 규모는 15조원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수은 자본금 상향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수은법 개정을 통해 자본금 규모를 수정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은 의원입법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상향 액수는 향후 국회 논의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은 수은 자본금 규모를 현행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두 배 늘리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는 1976년 최초 1500억원에서 1977년 5000억원으로 늘었다. 이후 1조원(1986년), 2조원(1998년), 4조원(1999년), 8조원(2009년) 등으로 규모가 커졌다. 2014년에는 8조원에서 15조원으로 자본금 한도가 증액됐으나 공적수출신용기관(ECA)으로서 수출 금융을 지원하기엔 부족한 금액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수은 자본금을 25조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냈지만 흐지부지됐다.
기재부는 수은 자본금 상향은 특정 국가나 특정 사업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 9년간 자본금 규모가 유지된 만큼 수출·수주 지원 확대를 위한 금액 조정을 물밑에서 준비해 왔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방산 업계 등은 수은의 자본금 한도가 올라갈 경우 가장 먼저 폴란드 방산 수출 사업이 지원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폴란드와 1차 방산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K-2전차 180대(4조4992억원), K-9 자주포 212문(3조2038억원), FA-50 경공격기 48대(4조2080억원), 천무 다연장로켓 약 5조원 등 총 17조원이다. 이 가운데 12조원에 대한 폴란드의 수출 금융 지원 요청이 있었고, 정부는 이를 검토하고 있다.
통상 대규모 사업 발주국은 부족한 재원 조달을 위해 입찰 당사국에 금융 주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금융지원 규모 등의 조건이 수주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거래 규모가 크고 민감한 방산 수출의 경우 보통 수은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이 금융지원을 해 왔다.
현재 정부와 폴란드 측은 2차 방산 계약을 놓고 추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K-2전차 820대와 K-9 자주포 360문 등 2차 계약 물량 가격은 약 30조원에 이른다. 폴란드는 2차 계약 조건으로 20조원 이상의 추가 금융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아직 이와 관련한 내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수은의 법정자본금이 올라가면 이번 폴란드 방산 계약 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자본금을 상향해도 정부의 출자 절차가 추가로 필요하다. 또 방산 지원에 자본금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면 수출입은행법 시행령에 위배될 수도 있다. 현재 수은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일차주에 대한 신용공여(대출) 비율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국가·사업에 금융 지원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결국 정부가 수은 자본금을 조정해도 폴란드가 요구하는 수준의 수출 금융을 투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주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순방 과정에서 양국이 방산 수출 자금 조달과 관련한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