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둔화, 고금리 여파에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장사들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주가가 줄줄이 하락세다. 유상증자란 새로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하는데, 주주로부터 수혈받은 돈을 투자확대나 신사업보다 재무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빚’ 상환에 쓰는 비중이 커 일반 투자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CJ CGV,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연일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유상증자 공시를 한 CJ CGV는 이날 전거래일 대비 -5.97% 하락한 914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전거래일 대비 -1.68% 떨어진 15만8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각각 최근 1개월간 33.9%, 16.2% 빠진 수치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은 1조18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조달한 자금으로 시설(4185억원), 채무상환(3500억원), 타법인 취득(4092억원)에 투입할 예정이다. CJ CGV는 지난 20일 시가총액을 웃도는 규모인 5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는 자금조달을 위해 기업들이 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꼽힌다. 대개 시장에서 악재로 통하는 탓이다. 유통주식수 증가로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될 수 있고, 기업들이 빨리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 주가 대비 발행가액을 싸게 내놔 저렴한 가격의 신주가 대거 매물로 쏟아질 우려가 있다. 다만, 신사업 투자 등의 자금조달 목적이라면 주가에 긍정적이다. 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될 수 있다.
문제는 자금조달 목적이 대부분 빚 갚는데 쏠려있다는 점이다. CJ CGV는 증자 자금 5700억원 중 3800억원이 채무상환에 투입할 계획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82.5%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도 29.7%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뤄진 유상증자 공시는(정정공시 제외) 10여 건에 달했는데, 증시로 조달되는 총자금(2조2019억원) 사용처의 약 35%가 채무상환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증자방식도 주가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힘 있는 대주주나 제3자 대상으로 증자를 할 경우 지분희석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줄지만, 이들 기업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을 택했다.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일반 개인 주주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계열사의 재무악화가 그룹 전반에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상대적으로 우량한 계열사가 어려움에 빠진 계열사의 자금조달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부담이 옮겨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지주는 자회사 유상증자 참여 등 자체 재무부담 커지면서 최근 신용평가가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강등됐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대기업 계열사들조차 어려워진 국면에 접어들고 있어 사전에 재무적 건전선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