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9일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던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심플하게 답변하십시오”라는 내용의 쪽지를 건네는 모습이 포착됐다. 최 원장은 유 사무총장의 메모와 유사하게 답변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쪽지로 답변하는 사무총장과 그대로 따르는 원장, 감사원이 사무총장의 놀이터인가”라고 질타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최 원장이 야당 의원들로부터 질의를 받는 도중 유 사무총장이 이같은 메모를 작성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유 사무총장은 또 “녹취록 관련, 기술적으로도 프라이버시, 업무기밀 등은 보도하기 곤란함”이라는 쪽지를 쓰기도 했다.
최 원장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결과와 관련해 ‘6월 1일 감사위원회의 전체회의 녹음 파일’ 제출을 요구받았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녹음파일을 제출해달라고 했는데 (감사원이) 안 했다”며 “(회의록에는) 회의를 노골적 방해하는 보조기구(사무처)의 언행이 고스란히 담겼는데 이건 녹음파일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유 사무총장이 전달한 쪽지 내용과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최 원장은 “녹음파일 부분은 회의록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의 녹취록 수준으로 자세히 돼 있다”며 “녹취파일은 저희들이 제출해 드리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발끈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유 사무총장이 대통령실에 밀착해서 감사원을 검찰 2중대로 만들더니 그 위세를 믿고 호가호위하나”라며 “유 사무총장은 최재해 감사원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사무총장이 원장에게 해야 할 말도 정해주고 원장의 지시도 따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변인은 “감사원의 공직기강이 완전히 무너진 꼴”이라며 “지금 감사원장이 최재해인지 유병호인지 헛갈릴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무너진 내부 공직기강은 독립성과 중립성을 상실한 채 무너져 가는 감사원의 상징처럼 보인다”며 “유 사무총장은 더 이상 감사원을 망치지 말고 짐 싸서 집으로 가야 한다. 보기 흉하다”고 비난했다.
유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감사원 내 ‘실세’로 꼽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지휘한 ‘월성원전 사건’(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수사의 전 단계인 감사원 감사를 주도했던 유 사무총장(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6월 사무총장으로 발탁됐다.
앞서 유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유 사무총장은 “공직자로서 절제된 용어를 쓰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