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60대 운전자가 다치고 12살 손자가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민사소송과 관련해 법원이 급발진 여부를 가릴 사고기록장치(EDR) 감정과 음향분석 감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는 차량 운전자 A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 감정기일을 27일 진행했다.
감정기일은 재판 과정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 재판부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묻는 날을 말한다.
재판부는 원고 측의 EDR 감정 신청과 음향분석 감정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또 감정인을 선정하고 감정할 내용을 정리했다.
특히 EDR 감정과 관련해서는 시속 110㎞에서 5초간 가속페달을 100% 밟았을 때 속도 변화가 어떻게 되는지를 감정하기로 했다.
원고 측은 이 EDR 감정을 통해 급발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 측에 따르면 사고 5초 전 속도가 110㎞였던 A씨의 차량은 분당 회전수(RPM)는 5500까지 올랐지만 속도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100% 가속 페달을 밟았다(풀 액셀)’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차량 음향분석 감정도 함께 진행된다. 법원은 감정을 통해 정상적인 급가속 시 엔진 소리와 이번 사고에서의 엔진 소리 간 음향 특성이 다른지, 사고 차량에 변속레버를 변경하는 소리가 녹음됐는지, 전방 추돌 경고음이 작동했는지, 사고 당시 운전자가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사고 차량과 같은 연식·모델의 차량에서는 변속 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재판부는 EDR 감정은 10일가량, 음향 감정은 50일가량 소요된다는 감정인 의견에 따라 다음 변론기일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추후 감정 결과가 도착하면 다음 기일을 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6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A씨 가족은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차량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갖는 이른바 ‘도현이법’ 청원을 냈다. 이후 해당 청원 글에 5만명이 동의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산업계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