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 다시 분류하자 반도체 업계는 반색하고 있다. 반도체는 4년 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분야다.
우선 일본에서 반도체 소재·장비를 들여올 때 절차가 간소화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건건이 심사를 받게 돼 복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그렇다고 수입을 못한 적은 없었지만,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측면에서 반길 만하다”고 27일 밝혔다.
공급망을 이전보다 다변화할 수도 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에 주력해왔다. 일본은 지난 2019년 7월에 고순도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이후 한국은 소재 국산화에 주력했고, 일부 품목은 성공했다.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가운데 반도체 분야 수입액에서 일본산 비중은 2018년 34.4%에서 지난해 24.9%로 감소했다. 하지만 일부 반도체 핵심 소재의 경우 여전히 일본산 의존도가 높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선단 공정에서 쓰이는 일부 소재는 일본산을 대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일본산 대신 중국산 수입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발생했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지난 3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일본산 수입 비중은 2018년 41.9%에서 지난해 7.7%까지 감소했다. 반면 중국산 수입은 2018년 52%에서 지난해 80.1%로 증가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산 수입 비중은 2018년 93.2%에서 지난해 77.4%로 줄었다. 대신 한국 기업은 기존 일본 거래선의 벨기에 소재 합작법인을 통해 우회 조달하는 방식으로 수요를 충당했다.
그러나 최근 미·중 갈등으로 불거진 지정학적 위기로 반도체 공급망은 혼란에 빠질 위험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재지정은 공급망 안정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기존에 확보한 공급망에 일본의 소부장 공급망이 추가되는 셈이다.
일부에선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부장 국산화가 상당히 진전됐고, 수급에 차질이 생길 만큼의 큰 타격은 없었던 만큼 화이트리스트 복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물자 조달이 안 되거나 지연되는 식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이번 재지정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민아 전성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