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푸틴, 프리고진 겨냥 “반란 주동자는 배신자”

입력 2023-06-27 06:14 수정 2023-06-27 08:07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장 반란을 일으킨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고니 프리고진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대다수 바그너 그룹 지휘관과 용병들은 애국자라며 유화책을 폈다. 프리고진이 축출을 요구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심야 회동을 하는 사진을 공개하며 군부 껴안기에도 나섰다.

전문가들은 리더십 안정을 위한 자구책 성격으로 풀이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서방 등 외세와 상관없는 러시아 체제 내 투쟁이라고 선을 그었다.

푸틴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반란 주동자는 (러시아) 병사들이 서로를 죽이길 원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같은 결과를 원했다”며 “반란 주동자는 조국과 자신의 추종자들을 배신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상황은 모든 협박과 혼란이 실패할 운명임을 보여줬다”며 “무장반란은 어떤 경우든 진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태 시작부터 위협을 제거하고 헌정 및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필요한 결정이 즉시 내려졌음을 강조한다”며 “사태 초기부터 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유혈을 피하는 조처가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바그너 반란군이 별다른 저항 없이 모스크바 200㎞ 이내까지 신속히 진군할 수 있었던 건 대규모 내전을 피하라는 자신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해명이다.

푸틴 대통령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이 사회에 의해 단호히 거부되고 러시아에 얼마나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를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바그너 그룹의 지휘관과 병사 대부분이 러시아의 애국자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우들에 맞서도록 반란에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순간에 멈춰서 유혈사태로 향하는 선을 넘지 않은 바그너 그룹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그너 용병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며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도 된다. 아니면 벨라루스로 가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반란 사태 종료 후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건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 발언은 프리고진과 용병들을 분리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는 프리고진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하지 않고 ‘주동자’라고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안보기관 수장들과 이번 사태에 대해 분석하고 과제를 논의하는 회의를 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밝혔다. 회동에는 쇼이구 장관과 이고르 크라스노프 검찰총장,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장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장,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근위대 대장,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연방수사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프리고진이 반란의 명분으로 제시했던 쇼이구 장관 등 수뇌부 교체를 거부하고 지지세력 끌어안기에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쟁 강성파들은 더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대응은 체제 안정을 위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연설을 “푸틴이 흔들리는 국가 통제권을 재확인하고 안보에 심각한 결함이 노출됐다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또 “많은 강경파들이 반역자와 타협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해왔다”며 프리고진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합의에 대한 강경파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프리고진은 이날 반란 회군 후 첫 음성 메시지를 올리며 “우리는 러시아 정부 전복을 위해 행진한 것이 아니었다. 특별군사작전 중 실책을 저지른 이들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행진으로 인해 국가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드러났다”며 용병들이 하루 만에 러시아 내부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1000㎞를 진군한 것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우린 (이번 사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러시아 체재 내에서의 그들 투쟁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우리가 모두 의견이 같은지 확실히 하기 위해 주요 동맹국을 소집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조율하고 대응을 조율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나는 국가안보팀에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매시간 내게 보고하는 한편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에 미국이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외교 채널을 통해 러시아에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러시아의 체제 전복은 미국 정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