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0세의 현역 프로야구 선수가 있다. 운동선수로서는 환갑을 지난 나이다. 여느 다른 프로야구 선수들처럼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프로야구판을 호령하며 전성기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4번 타자 최형우 선수 이야기다.
최근 최형우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최 선수는 20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원정 경기에서 4회초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때려 국민타자로 불렸던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의 1498타점을 넘어 1500타점을 기록했다. 이로써 최 선수는 KBO리그 통산 1500타점 고지를 밟은 첫 번째 선수가 됐다. 그러나 최 선수는 원래부터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전라북도 전주 출신의 최 선수는 2002년 고졸 신인으로 삼성 라이온스로부터 2차 6라운드(전체 48순위)로 지명받아 포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그해 4경기에서 5타석에 나서며 데뷔했으나,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2004년 다시 힘겹게 1군에 합류한 최 선수는 포수로서 ‘송구가 안 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2경기에서 2타석에 선 게 전부였고, 결국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됐다.
이후, 최 선수는 국군체육부대 야구단의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하고,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 와중에도 글러브를 놓지 않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타고난 재능은 부족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도 기회를 주는 것인가. 최 선수에게 ‘경찰야구단 창단’과 함께 입단이라는 천운이 주어졌다. 최 선수는 경찰야구단에서 익숙한 포지션인 포수를 포기하고 외야수로 전향한 뒤 타격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결국, 2007년 퓨처스(2군) 북부리그에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그러자 삼성 라이온스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최 선수는 2008년에야 비로소 진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데뷔 6년만에 비상을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스의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고, 당시 25세의 역대 최고령 나이로 KBO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118타점을 올리며 타점왕 타이틀도 따냈고, 2014년부터는 3년 연속 ‘30홈런과 100타점’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열매는 달콤했다. 2017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최 선수는 계약 기간 4년에 연봉 총액 100억원을 받으며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이렇게 최 선수는 KBO리그 FA 역사상 처음으로 ‘100억원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이 됐다. 특급 대우로 이적한 이후에도 그는 방심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이적 첫 시즌인 2017년에 120타점을 올리며 KIA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에 앞장섰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KIA 타이거즈 4번 타자는 최형우 선수다.
세상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많지 않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그 재능을 꽃피우는 사람 또한 드물다. 그러나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은 많다. 결국,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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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