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머니에 필로폰 있다” 남은 0.6g은 유죄?

입력 2023-06-25 11:01

마약 투약으로 두 차례 수감생활을 했던 A씨(56)는 출소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2월 26일 대구의 노상에서 성명불상자에게 10만원을 주고 필로폰을 샀다. A씨는 그날 호텔 객실에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하고 난동을 부리다 체포됐는데, 남은 필로폰 0.6g이 주머니에 있었다.

투약 후 남은 필로폰 0.6g과 관련된 혐의를 놓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만 두차례 이뤄졌다. A씨의 마약 매수·투약과 소지가 하나의 범죄인지, 별개 범죄인지를 놓고 1·2심 판단 유무죄가 엇갈렸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에서 어떤 부분이 쟁점이 된 걸까.

체포 당일 오전 A씨는 이미 두 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였다. A씨는 그날 밤 객실에서 경찰에 붙잡히면서 욕설과 함께 “내 주머니 안에 필로폰이 있다”고 소리쳤다. 경찰은 A씨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과정에서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진 필로폰 0.6g이 담긴 비닐봉투를 압수했다.

1심은 남은 필로폰을 별도 소지 범죄로 보고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필로폰 매수, 투약, 소지 3가지 범죄 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심은 A씨가 주머니에 남은 필로폰을 넣어뒀던 것은 매수 후 ‘일시적 상태’에 불과하다며 매수 범죄에 포함시켰다. 그러면서 필로폰 소지 관련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이 A씨의 마약 소지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형량은 1년 4개월로 줄었다.

2심은 “A씨의 마약 매수와 소지 행위가 시간적으로 근접한 점, A씨가 투약하고 남은 필로폰 잔량을 별도 장소에 숨기지 않은 점, 필로폰을 다른 마약과 혼합해 형태를 변경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춰보면 매수 행위와 구별되는 별도의 범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지난해 11월 A씨의 마약 소지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의 필로폰 소지 행위는 적당한 기회에 다시 투약하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넣어 보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투약하기 위해 보관했다는 점에서 매수 행위에 뒤따르는 일시적 상태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A씨의 필로폰 소지는 매수 행위와 독립된 별개 범죄”라며 유죄 취지 판단을 내렸다.

사건을 돌려받은 파기환송 재판부는 필로폰 소지 부분만 따로 심리해 유죄로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1개월을 추가로 선고했다. A씨는 “남은 필로폰이 있다는 범행을 자수했음에도 재판부가 감경해주지 않았다”며 재차 상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최근 형을 확정했다. A씨에게 총 1년 5개월이 선고된 것이다. 대법원은 “자수 감경은 재판부 재량”이라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