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이 쏘아올린 공… ‘군사 스타트업’에 22조 투자

입력 2023-06-25 10:55

투자 혹한기를 맞은 스타트업 가운데 여파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다. ‘군사 스타트업’이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기존에 꺼려왔던 ‘군사 스타트업’에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 전문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시장정보업체 피치북 통계 자료를 통해 ‘방위 및 항공우주’에 대한 실리콘밸리 밴처케피탈(VC)의 투자 건수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200건 이상이 달한다고 보도했다. 신냉전으로 치닫는 우크라이나전 상황이 지난 수년 동안의 투자 기조를 바꾼 것이다.

실리콘밸리 VC들은 방위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꺼려왔다. 미 국방부의 보수적인 성향과 해외 분쟁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 국방부는 기존 업체와의 계약을 선호하는 기조 탓에 신생 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계약이 없기도 했다. FT는 미 공공조달계약 구조상 시제품을 만들고 정부와 계약하기까지 과정에서 군사 스타트업들이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사업화 검증 단계를 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AP연합뉴스

군사 스타트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투자 규모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군사 스타트업에 투입된 전체 투자액은 159억달러(약 20조5078억원)였다. 그러나 올 1월부터 5월까지의 투자금은 2019년 전체 투자금을 훌쩍 뛰어넘은 170억달러(약 21조8960억원)였다. 실리콘밸리 VC 중 미국의 IT 벤처 투자 전문 회사인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실리콘밸리 빅4 VC인 ‘세콰이어 캐피탈’ 등은 방산 제품 개발업체부터 ‘키네틱(kinetic·치명적인)’ 무기 시스템 개발 스타트업에까지 발을 뻗고 있다.

예컨대, ‘안두릴 인더스트리’는 지난해 1월 적대적 드론을 식별해 추적,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 특수작전사령부와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업체는 10억달러(약 1조3120억원)의 계약을 수주했다. ‘마하 인더스트리’는 수소 동력 무기와 방위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로 VC에게 초기 자본금 600만달러(약 78억7200만원)를 지원받았다. 최근 VC들의 투자 기조가 바뀐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전 국방부 국방혁신부 국장을 지내고 투자회사 쉴드(shield)의 파트너인 마이클 브라운은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 편안하다는 VC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북서부 레닌그라드에서 기갑부대 탱크가 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쉴드AI의 설립자인 브랜든 챙은 설립 초기인 2015년 당시 상황과 현재를 비교하며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 설립 당시 30명의 투자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갑자기 모든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군이 스타트업과 같은 군사적 상용 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웃도는 방산 유니콘 기업은 쉴드AI, 안두릴 인더스트리 등 6개에 달한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