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교인 풀러의 제6대 총장 데이비드 임마누엘 고틀리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풀러신학교의 첫 흑인 총장이기도 한 고틀리 박사는 전임인 마크 레버튼 총장의 뒤를 이어 지난 1월 부터 학교를 이끌고 있다. 이번 방한은 26일 갈보리교회(이웅조 목사)에서 열리는 풀러 동문 및 재학생 모임 참석을 위해서다. 24일 국민일보와 만난 고틀리 박사는 미국 신학교들이 직면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풀러신학교의 노력들을 소개했다. 문화적 충돌 속에 교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가
“15년 전쯤에 침례교단연합회 연례회의 방문차 서울에 왔었다. 당시 전 세계에서 500여명의 침례교 지도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국교회가 가진 예배의 역동성과 선교적 에너지 선교사들을 섬기는 태도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특히 한국교회 성도들의 열정적인 기도와 섬김, 공동체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당시에도 한국은 발전된 나라였다. 이번에 다시 찾은 한국은 여전히 빠르게 발전하는 곳이라고 느꼈다. 이전보다 많은 고층빌딩과 새롭고 세련된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신학교들의 통폐합 소식이 종종 들린다. 위기가 어느정도인가
“통계적으로 미국 내 크리스천 인구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교회가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 교단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말은 학교나 학생들을 도울 재정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신학적 교육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원을 공유하기 위해 통폐합이라는 선택을 하는 학교들도 생겨났다. 팬데믹으로 인해 위기 상황이 부각되고 위기 요인이 가속화 된 것은 맞다. 그러나 팬데믹 때문에 학생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학교들은 성장하기도 했다. 전체 재적 수로만 보면 지난 20년간 크게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
-풀러신학교는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풀러신학교에는 지난 15년 동안 신학생의 숫자는 줄었지만 심리대학원의 숫자가 증가했다. 아무래도 상담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학과 선교학을 배우는 학생이 가장 많다. 신학과 선교학과 상담학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풀러신학교는 학문 간의 통합을 중요시한다. 다만 전통적인 신학 학위를 공부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에 혁신적으로 새로운 학위과정을 만들려고 한다. 하나는 ‘채플린’ 관련 과정이다. 원목이나 군목처럼 교도소나 스포츠팀 기업 등에서 일하는 목사를 말한다. 채플린 양성 과정이 오는 가을학기부터 시작된다. 또 다른 하나는 결혼-가족치료 박사학위 프로그램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2년 전부터 관련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이를 박사과정으로 심화하려고 한다. 계속되는 원격프로그램에 대한 요청에 응답하기 위한 온라인 강좌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동성애와 낙태 이슈 등 세속문화와 기독교의 충돌이 심해지고 있다. 기독교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성경의 가르침이 공공의 선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세우려다 사람들을 해쳐선 안 된다. 은혜를 베풀고 사랑하고 온유함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분은 사랑을 말씀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 등 위선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대하셨지만 약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크리스천도 때에 따라 생각들을 논박 하고 솔직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패배시키고 적을 만들고 파괴하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반대자들을 이웃으로 대해야 한다. 적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삶이 신실한 삶인가를 두고 성경 해석의 방식에 따라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현대적인 성경 해석과 전통적인 성경 해석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것은 다른 하나른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두 해석의 교차점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균형이 중요하다.”
-서구권에서 기독교의 감소가 심상치 않다. 반전의 기회는 없을까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심고 물 주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시간과 계절이 있다. 식물과 나무가 건강해 보이지 않아도 생명이 계속되는 것과 같다. 이파리가 없어도 나무는 살아 있고 때가 되면 다시 열매를 맺는다. 성경에도 때가 있든지 없든지 신실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도 신실하게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순절 계통 교회들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아프리카와 남미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오순절 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다. 반면 경험을 무시하고 철학적이고 지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교단들은 약해지고 있다. 좋은 신학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영성에 대한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풀러신학교의 첫 흑인 총장 선출을 미국 교회의 변화로 해석해도 될까
“풀러신학교의 주요 보직인 총장과 연구처장 교무처장 모두 흑인이 맡고 있다. 풀러 뿐 아니라 많은 신학교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아시안 리더들이 증가하고 있다. 긍정적인 일이다. 중요한 변화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교회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백인이 다수인 교회에서는 여전히 백인 남성 목회자를 선호한다. 풀러신학교에서 흑인 총장이 선출된 일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이제 한 단계 나아갔을 뿐이다. 역사적인 인종 갈등은 극복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이 많다. 미국 교회에는 하나님이 주신 다양성이 더 필요하다.”
-한국에는 풀러 출신 목회자와 풀러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교회의 신학 형성에 풀러가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 특히 풀러의 생태계에 끼친 한국교회의 공헌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풀러에 오면 한국어와 영어로 공부할 수 있다. 한국인 교수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풀러신학교에서의 경험은 목회자의 역량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신학과 심리학 리더십과 섬김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