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몰래 보내고파”…온라인 곳곳서 불법 입양시도

입력 2023-06-24 00:01 수정 2023-06-24 00:01
게티이미지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출생 신고가 안 된 영아들의 살해·유기 사례가 드러나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불법 입양 시도가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게시물이나 SNS를 통한 불법 입양은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 출산 관련 제도 개선은 물론 당국의 단속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SNS에는 23일 낳은 아이를 데려갈 곳을 구한다는 ‘불법 입양’ 문의 게시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정식 입양 절차를 밟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출산 사실 자체를 숨기고자 하는 이들이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 문의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낳자마자 보내고 싶어”…“출산비 400만원 달라” 요구도

네이버 지식iN과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 등에는 최근 “몰래 아이를 낳아서 입양 보내고 싶은데 도움을 달라” “8월 출산인 여자아이를 입양 보낼 테니 연락을 달라” 등의 글과 대화방이 올라왔다.

지난해에도 현재 임신 24주차 미혼모라고 밝힌 이가 “아기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출산하면 아기 입양 보내려고 한다”며 “입양 숙려기간 없이 낳자마자 바로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2021년 작성된 글에는 “너무 막막하다. 혹시 비공개 출산과 입양이 가능한 곳이 있나”라는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일부 산모가 아이를 입양 보내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한 사례도 등장했다. 한 매체는 SNS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입양 보내고 싶다며 글을 올린 이가 조리원, 출산비용 등 400만원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은 “입양 후엔 절대 연락하지 않겠다”며 “기형아 검사 결과, 초음파 사진, 진료 기록 등을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양측의 금전 거래가 있으면 ‘아동매매’ 혐의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불법 입양 관련 문의 글과 답변들. 네이버 캡처

문의 글 접한 브로커 접근…실제 ‘불법 입양’ 적발

불법 입양 정황도 곳곳에 남아 있다. 입양 문의 글에는 “쪽지 달라” “비공개 출산과 입양이 어렵지만, 방법이 없지 않다. 연락 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들이 정식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입양 절차를 밟는 것은 입양특례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브로커가 지원을 약속한다며 산모에게 접근해 입양을 성사시키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아동복지법 위반(유기)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경찰에 “2021년 1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한 후 인터넷을 통해 아기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을 찾게 돼 아이를 넘겼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네이버 지식iN 등을 통해 3년간 신생아 4명을 불법 입양해온 30대 여성 B씨가 경찰에 적발돼 구속됐다. B씨는 산모에게 병원비를 주고 자신의 인적 사항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까지 마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생아에 대한 기록을 산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남기지 않고 입양을 보내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불법 입양은 신생아가 사실상 ‘유령 인간’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출생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어디로 입양이 됐는지, 안전한지 등을 사실상 파악할 수 없다. 한 포털에는 “지인이 5년 전쯤 데리고 온 아이가 있다.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생모에게 병원비를 주고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출생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부, 미출생신고 아동 조사…주사랑공동체 “1000명은 유기·불법거래 가능성”

정부는 2015∼2022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 2236명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감사원이 이 중 23명을 선별해 조사한 결과 일부 아동이 사망했거나 유기된 정황이 드러나자 나머지 아동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 상당수가 베이비박스(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에 담겼거나 불법 입양 혹은 유기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는 “정부 전수조사 대상 2000여명 중 베이비박스 사례를 제외하면 1000여명의 아기 중 다수는 유기에 의해 사망했거나 불법 인터넷 입양거래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정부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아동이 태어났을 때 출생 사실이 지자체에 통보되는 제도다. 이 경우 집에서 나 홀로 출산하는 미혼모 등이 있을 수 있어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호출산제’다. 두 제도는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민정 법무법인 큐브 변호사는 “합법적으로 입양이 되면 양부모의 양육상황, 입양 동기, 양육능력 등이 고려돼야 하는데 온라인상에서 불법적으로 입양이 이뤄지면 아이의 복리를 담보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관계 당국의 주기적이고 적극적인 단속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