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 키로를 돌보는 윤모(30)씨는 지난해 동물용 탈취제를 한번 사용한 뒤 폐기했다. 고양이 배변 모래에 섞어 쓰면 냄새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정작 키로가 유달리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23일 “배변 냄새가 덜 나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키로는 그 자리를 계속 피했다”며 “사람에게 무해한 제품이라고 동물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 모래를 키우는 박모(33)씨도 카펫 등에 뿌리는 동물용 탈취제를 더 쓰지 않는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려 하는’ 이식증을 앓는 모래가 탈취제가 묻은 것까지 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모래가 뱉어낸 토사물엔 그루밍을 통해 몸속에 쌓인 털 뭉치뿐만 아니라 천·비닐 조각이 나왔다. 박씨는 “모래가 몸치장을 많이 하는 데다 소파, 수면 바지 등의 천 종류도 뜯어 먹는다”면서 “주변에 삼킬 수 있는 건 두지 않으려고 특히 신경 쓴다”고 말했다.
동물용 화학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일 생활 화학제품 제조기업 유한크로락스의 동물용 탈취·표백제 ‘펫 매스 리무버’가 논란을 재점화했다. SNS에서 4.7㎏ 16개월 된 고양이 매기가 정상 수치의 1463배에 달하는 급성간부전으로 사망한 소식이 전해지며 불안감이 증폭됐다.
당시 보호자는 사망 보름 전부터 사용한 화학 제품의 ‘리모넨 성분’에 의혹을 제기했다. 유한크로락스는 논란이 된 성분의 제품 함유량이 0.0013%에 불과하며 출시 전 진행한 제품 안전성 검사에서 이상 반응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SNS와 유한락스 홈페이지엔 “반려동물 안전성 검사 결과를 공개하라”, “안심하고 사용하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근거 있는 불안감…“대체 안전 기준이 뭔가요?”
고양이 집사들이 이처럼 불안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화학 성분의 영향은 종마다 다를 수 있어서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특정 동물에게 유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경철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화학 성분에 대한 반응은) 종 특이성이 있어서, 사람, 개, 고양이가 다르다”며 “개나 고양이는 후각이 사람보다 최대 100만배까지 발달해서 사람에게는 무해하더라도 동물들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건 감귤과 같은 시트러스계 향료로 주로 쓰이는 ‘리모넨’ 성분이다. 리모넨은 오남용 시 고양잇과 동물이 섭취하거나 접촉하면 간 기능을 떨어트리고 마비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화학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양이, 쥐 등은 사람과 달리 리모넨을 분해하는 단백질 알파 글로불린(α2u-globulin)을 갖고 있지 않아 더 민감하다. 살충제에 함유된 ‘리모넨’을 분석한 미국 환경보호청의 ‘재등록적합결정 보고서(RED)’는 리모넨 성분이 어린 고양이에게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물용 화학제품이지만…안전성 기준은 ‘인체 위해성’
현재 국내 동물용 탈취·표백제의 안전성 기준은 ‘인체 위해성’을 중심으로 정립돼 있다.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명칭은 같은 ‘동물용 탈취·표백제’이지만 동물에게 직접 뿌리는 제품과 동물 주변에 뿌리는 제품에 따라 소관 부처와 적용 법률이 다르다.
반려동물에 ‘직접’ 뿌리는 동물용 탈취·표백제는 약사법에 명시된 동물용의약외품(애완동물용 제재)에 해당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한다. 여기서 ‘리모넨 성분’의 안전성은 ‘인체’에 대한 작용에 바탕을 둔 화장품 안전기준을 따른다. “과산화물가가 20mmol/L를 초과하는 리모넨”을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환산하면 2724.8ppm(0.2724.8%)을 초과하는 리모넨 성분은 직접 뿌리는 동물용 탈취·표백제에 사용할 수 없다. 과산화물가는 화학물질의 총량이 아닌 실험 뒤 남아있는 잔존총량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품에 들어간 농도·함량은 더 커서 실제 노출량은 더욱 높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반려동물 주변과 물건에 사용하는(간접사용) ‘동물용 탈취·표백제’의 경우 리모넨은 ‘탈취·표백제 내 함유금지·함량제한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신 알레르기반응가능물질로 지정돼 0.01% 이상 함유한 제품에 성분 명칭만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소관 부처이고, 관련 규정을 담은 화학제품 안전법도 동물이 아닌 ‘인체·환경 위해성’을 안전성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하린 호주 퀸즐랜드 병리학연구소 생화학 연구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체에 대한 안전성 기준을 모든 동물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한국은 동물보호 관점의 화학물질 규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구분이 더욱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신의 털을 혀로 핥아 빗질하는 ‘그루밍’ 등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하면 주변부에 뿌리는 제품과 직접 사용하는 제품이 화학제품 영향 면에서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 제도하에선 화학제품의 영향을 받아 ‘특정 반려동물’이 피해를 볼 때에도 ‘제품의 위해성 평가’는 이뤄지지 않는다. 동물자유연대 감사로 있는 한재언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화학 제품의 동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화학제품안전법) 정의 규정에 ‘동물 위해성’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화학 제품 관리 이원화… ‘사각지대’ 어쩌나
동물용 화학제품에 ‘동물 위해성’ 기준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법에 따라 관리 책임과 적용 법률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직접사용·간접사용을 이유로 동물용 화학제품의 안전 관리 책임과 관련 법령을 구분 지어 놓다 보니, 위해성 논란이 있는 화학 제품을 사전에 걸러내는 데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지적이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국내 동물 탈취·표백제 제품 중 ‘리모넨’ 성분이 포함된 제품 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환경부에 신고된 동물용 탈취제·표백제(간접 사용) 가운데 리모넨 성분이 포함된 제품은 총 72개였다. 이 가운데 53개가 시중에 판매 중이다. 리모넨 최대함유량 0.27%를 초과하는 제품은 5개였다. 한 제품은 최대함유량이 1.155%에 달하기도 했다. 다만 이 제품들은 모두 반려동물 주변과 물건에 사용하는 동물용 탈취·표백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화학제품안전법 위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환경부가 간접사용 제품으로 판단해버리면 그 제품을 동물이 흡입해서 생기는 문제나 피해 상황을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지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성준 의원은 “현행법상 동물용탈취제는 동물에 직접 사용 여부에 따라 관리부처가 농림부-환경부로 이원화돼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며 “캣타워, 침구 등에 사용되는 동물용 탈취제의 경우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사람에 대한 위해성만 평가할 뿐, 동물에 대한 안전성이나 유해성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물 위해성 우려가 있어도 농림부는 해당 제품이 환경부 소관인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른 생활화학제품으로 분류돼 본인들에게 관리 의무가 없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앞으로 반려동물에 사용되는 화학제품 관리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부처를 일원화하는 등 제도 개선 및 관련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