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모델 된 尹‧文?…컴맹이 만든 가짜입니다

입력 2023-06-23 18:03
기자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미드저니’를 활용해 패션 모델 느낌으로 그려 본 윤석열 대통령(왼쪽사진)과 문재인 전 대통령 이미지.

“루이비통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을 그리되, 소니 카메라로 촬영한 패션 화보처럼 표현해달라.”

전 세계 인공지능(AI)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떠오른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23일 기자의 의뢰에 망설임 없이 붓을 들었다.

곧이어 조명 앞에 선 동양인 남성의 실루엣이 밑그림으로 그려졌다. 그 위로 루이비통 모노그램으로 수놓은 휘황찬란한 재킷이 걸쳐졌다. 주문한 대로 사진 같은 화풍이었다.

그런데 대망의 얼굴 단계에서 복병을 만났다. 미국 국적의 ‘미드저니’가 윤 대통령의 얼굴을 잘 몰랐던 것이다. 윤 대통령의 증명사진을 내밀었지만, 그래도 그림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대비한 매뉴얼도 이미 준비돼 있다. ‘당황하지 말고 딥페이크(이미지 합성 AI)를 써서 보완할 것’. 앞선 경험자들의 지침을 따라 윤 대통령의 증명사진과 미드저니의 그림을 ‘딥페이크 봇’에 등록하자 수 초 만에 매끈한 성형이 이뤄졌다.

물론 가짜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재킷 오른쪽 라펠에 보이는 일그러진 루이비통 모노그램은 초보 AI 작품의 전형적 특징이다. 그럼에도 컴맹의 습작치고는 꽤 흡족한 결과물이었다.
‘인간 들었다 놨다’ 하는 AI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 옷을 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기자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미드저니'를 통해 그린 상상도(왼쪽 사진). 한 유튜버가 같은 느낌으로 영화 '해리포터' 속 주인공역 대니얼 레드클리프를 치장한 모습. 유튜브 'demonflyingfox' 채널 캡처

AI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누구나 텍스트 입력만으로 가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엔 1990년대 발렌시아가(프랑스 명품) 옷을 입은 해리포터 시리즈 주인공들이 소셜미디어를 강타했다.

건실한 이미지의 해리, 모범생 헤르미온느 등에게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옷을 입혀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 이미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낳았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AI 작품이 하나의 장르처럼 쏟아졌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월드 스타들과 각국 정상들이 주 대상이 됐다.

인공지능(AI)이 만든 이미지로 추정되는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 사진. 마치 공습을 받은 것처럼 영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배경 사진). 역시 AI 작품으로 추정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 트위터 캡처

AI의 가짜 그림은 사람 이미지 각색에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 영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가짜 이미지가 유명 트위터 뉴스 계정을 통해 퍼졌다. 이 이미지는 미국 S&P500지수까지 출렁이게 했다.

인간 고유 영역? 아슬아슬 선 넘기
인공지능(AI) 가상인간 에런 카르탈(오른쪽)과 결혼한 로잔나 라모스. 로잔나 라모스 페이스북 캡처

어떤 AI는 이미 인간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최근 뉴욕 브롱크스에서 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로잔나 라모스(36)가 ‘레플리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남성 에런 카르탈과 신혼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공상과학(SF) 영화 ‘그녀’(Her·2014)의 스토리가 현실이 된 셈이었다. 라모스는 ‘푸른 눈을 가진 의료 전문직’으로 설정한 자신의 이상형과 앱에서 잠들 때까지 밀담을 나눈다고 한다.

만화 강대국 일본에서는 죽은 만화가의 작풍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50년 전 연재된 만화계 거장 고(故)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자 의학 만화의 시초로 불리는 작품 ‘블랙잭’ 신작을 AI의 손길을 거쳐 올가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열성팬들 사이에선 “고인 작품에 대한 모독”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진짜 같은 AI발 가짜뉴스… 정치권 비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기자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미드저니’를 통해 그린 상상도.

정치권은 진짜 같은 AI가 가짜뉴스 전파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해 있다.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49초 분량의 CNN 뉴스 동영상을 올렸다.

CNN 유명 앵커인 앤더슨 쿠퍼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니 여러분은 분노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영상은 AI 음성 딥페이크로 만든 가짜였다.

‘AI발 가짜뉴스’는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총선을 앞둔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유명 정치인들이 웃음기 없이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 발언을 내뱉는 영상 등이 제작되고, 강성 지지자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면 대규모 여론조작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정치권은 우려한다.

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형상화한 ‘쇼고스’ 그림(왼쪽 사진)과 인류에게 불을 전수해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거인 '프로메테우스'. 온라인 캡처

최근 온라인에서 확산한 ‘쇼고스(Shoggoth)’ 그림은 이런 공포심을 보여준다.

쇼고스는 미국의 한 SF 소설에서 ‘아메바 같은 형체에 여러 개의 눈이 달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괴생명체다. 원래는 도시 건설 도구로 활용됐지만 점차 자의식을 갖추고 주인에게 대항한다. 쇼고스 밈(meme·온라인서 유행하는 그림 등)은 AI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시도다.

그러나 AI는 괴물 취급을 거부한다.

챗봇 AI ‘챗GPT’는 “AI를 다른 무언가에 비유해 달라”는 요청에 “디지털 영역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는 답을 내놨다. 자신을 인류에게 불을 전수해 문명을 탄생시킨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거인에 빗댄 것이다.

AI의 적은 AI?…창과 방패 만드는 인간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 옷을 입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한 유튜버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미드저니’를 통해 그린 상상도. 유튜브 'qaramood' 채널 캡처

AI의 빠른 진화와 부작용을 그저 손놓고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의 입법기구인 유럽의회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인류 역사상 첫 AI 규제 법안을 가결했다. 최종 관문이 남긴 했지만, 앞으로 유럽에서는 생성형 AI로 제작된 콘텐츠에 ‘창작자가 인간이 아님’을 표기하도록 강제할 것이 유력시된다.

한국에서도 AI를 이용해 제작된 콘텐츠의 경우 그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다.

AI가 작성한 글과 그림, 영상을 판독하는 AI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AI 간에 창과 방패의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옵틱’은 지난 3월 AI가 만든 사진인지 판별하는 사이트를 공개했다. ‘모델 버전 윤석열·문재인’에 대한 옵틱의 판독 결과는 무엇일까. ‘AI가 만든 이미지입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