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주한 ‘전기요금 결정체계 개편’ 연구 용역 마감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용역을 따낸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 7월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갖고 있는 전기요금 결정 권한을 전기위원회로 넘겨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권은 내년 총선 전까지 전기요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용역 결과가 사업계획서대로 확정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할 경우 오는 4분기 혹은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이 또 다시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23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태평양의 용역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태평양은 전기위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부 장관이 가진 전기요금 결정권한을 전기위로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전기위를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1년 출범한 전기위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기요금 체계 심의 권한을 갖는 최종 결정 기구다. 한국전력이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 전기료 인상·인하를 신청하면 전기위가 이를 심의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는 물가 관리를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 국민 여론, 정치 논리가 전기요금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시장 상황보다는 정무적인 판단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결정된 셈이다.
태평양도 “전기요금 규제는 전문성을 보유한 독립적 규제기관보다는 물가 안정을 포함한 기타 정치적 고려하에서 이뤄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탈정치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명시했다.
태평양은 “전기위는 당초 전력시장과 전력산업 분야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구비한 독립규제위원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기대됐지만 산업부 장관의 권한을 보좌하는 기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 결정권은 정부에 있어 전기위의 역할이 미미하다. 전기위는 심의기능만 있고 의결기능은 없어 인·허가 분쟁이 일어날 경우 공정성 시비도 제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연구 용역은 오는 30일까지가 기한이다. 사업계획서에 담긴 대로 전기위의 독립 체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전기요금 결정권을 전기위에 일임하는 방식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에 산업부가 딜레마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 일각에선 전기위가 한전 적자 해소와 전력 시장 노마진 구조 개선을 위해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 전까지 에너지 공공요금 동결을 강조하고 있는 여권이나 물가 안정을 목표로 두고 있는 기재부 등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
반면 산업부가 여권의 의중을 고려해 용역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9일 “현재 추진 중인 에너지 가격 결정 방식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수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단 용역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