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그 많던 성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입력 2023-06-22 20:31 수정 2023-06-22 21:01

지난 국민일보 기사 가운데 크리스천에 대한 혐오가 도를 넘어섰다는 내용이 게재 되었다(2023년 2월 3일자). 언론 드라마 영화 미디어(SNS 포함) 할 것 없이 사회 전반에 반기독교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2023년 기윤실 발표에 따르면 한국교회 신뢰도는 역대 가장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결과까지 나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국민 중 21%, 무종교인은 10.6%만 교회를 신뢰한다고 보았으며, 심지어 교인들조차 37%나 교회를 믿을수 없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세상의 희망이 될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든다. 도대체 이러한 한국교회를 향한 반기독교적 정서는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

고 박완서 작가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어떤 부침의 세월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재식(주인공인 나)’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제식민통치, 해방전후, 한국전쟁, 가난과 억압의 권위주의를 경험하며 기성세대가 어떻게 이 나라를 피땀으로 일구어왔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책 제목의 ‘싱아’는 본래 강인한 식물 이름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의도적으로 ‘옥수수 심부름꾼’이자 강인한 김재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서, 절망의 땅에서 옥수수 낱알갱이를 심고 거두어 발품팔아 희망을 만들어가던 김재식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책 제목은 독자들에게 역설적인 화법으로 김재식의 정신을 아로새겨놓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 정도였다면 척박한 환경에서 믿음의 씨앗을 뿌려온 한국교회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공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온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부터 열매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호감을 주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사 기록을 보면 조선사람은 서양 선교사들을 의심했고, 교회를 심하게 박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선교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성있게 전하고자 했다. 이방 나라에 불과한 조선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당연히 그 선교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던 한국교회들도 나라를 사랑하고 사회의 발전과 공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며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에 대해 우월하거나 이기적 집단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고 이웃을 위해 손해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교회는 가장 먼저 3·1운동에 앞장섰으며, 민족지도자 30인, 독립운동,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산업화와 민주화 할 것없이 가장 선봉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애국애민의 보루가 한국교회였음을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인정해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당시 초기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에서 1%도 안될 정도로 매우 작고 미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의 주류사회와 관계가 좋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황무지와 같았던 이 땅에 초기 선교사와 교회들은 사회와 동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이웃에게 더 다가기를 원했고 병원과 학교, 교회를 세우고 사랑으로 이 땅을 아름답게 수놓아 갔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지역사회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마음문을 열며 크리스천들을 다시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상과 다른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의 말에는 신뢰가 있는 것 같고 고도의 윤리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교회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최초로 복음이 전래된 시기부터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러했다. 오죽하면 불신자의 입에서 자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은 교회 다니라며 채근하였을 정도일까. 그 정도로 교회는 영성이 있었고 한국사회 안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겼던 믿음의 선배들의 수고 덕분에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이지, 어느 유명한 교회와 몇 사람의 노력으로 성장했다고 보면 큰 오산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성장은 사회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물질의 풍요속에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힘으로 성장했다는 공로의식에 사로잡히면서 교회는 세상과 이분화시켜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으로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거룩하다는 값싼 승리주의에 빠지게 되면서 섬기는 자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가르치려 들었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는 중세의 교회처럼 성육신적이기보다 권위주의를, 순례자보다 정착민이 되고, 자기를 비움보다 자신을 내세우려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한다.

굳이 성경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자면 아마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시대와 같지 않을지 상상해본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시대는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으나 영적으로는 가장 어두웠던 암흑시대와 같았다(왕상 22:39; 호 6:4~11, 13:1~16; 암 5:24). 역설적으로 이스라엘 안에는 많은 제사와 번제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만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이중적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주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교회는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는 사회로부터 대사회적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확신하건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복음의 자리로 돌아갈 때만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희망으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을 견지하면서 교회안의 제자도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로 살아갈 때 비로소 새로운 대안문화를 창조해 낼수 있을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크리스천들의 행위가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천이라면 다 믿어주고, 신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원주의 사회로 급변하면서 한국교회는 사회의 천덕꾸러기 신세나 다름없는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왜 오늘날 각종 통계지표는 한국교회에게 유독 신뢰할 수 없다는 주홍글씨의 꼬리표를 붙여버린 것일까. 암울한 시대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빛이 되어주던 그 많던 신실한 성도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온누리교회 대전캠퍼스
김상수 담당목사(‘풀 타임 크리스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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