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서 활동중인 이승민(26·하나금융그룹)은 발달장애우들의 영웅이다.
발달장애 3급으로 중학교 1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잡은 뒤 2017년 6월 KPGA 정회원 테스트를 통과하고 지난해 7월 US어댑티브 오픈 골프 대회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승민은 22일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CC(파71)에서 개막한 코오롱 제65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 주최측 초청으로 출전했다.
첫날 1라운드에서 9오버파로 부진한 이승민은 형이자, 캐디 겸 스윙코치인 윤슬기씨(43)와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을 하느라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말이 연습이지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윤코치의 특훈이었다. 곁에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 박지애씨는 “발달장애의 특성상 집중이 가장 어려운데 오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중을 못했던 것 같다”고 부진 원인을 분석했다.
이승민은 윤코치가 시키는대로 묵묵이 따랐다. 더러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어머니 박씨는 “저런게 달라진 모습이다. 대회장에서 다른 선수의 스윙을 따라하는 재주는 있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세심히 살피지는 못한다”면서 “최근 들어서는 본인이 궁금한 점을 형에게 저렇게 묻곤 한다”고 귀띔했다.
이승민과 윤코치는 애증의 관계다. 장애 특성상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아 형으로부터 꾸중을 들으면 더러 대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짜증을 내보았자 본인만 손해라는 걸 터득했기 때문이다.
이승민은 발달장애의 특성상 손 힘이 약하다. 그래서 견고한 그립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골프에 입문해 4년여만에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하기까지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랐다.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되지 않았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또 하나의 어려움은 두려움이다. 어머니 박씨는 “날씨, 기온, 골프장 환경 등 승민이의 감정을 결정하는 여러 변수들이 있다”면서 “가장 힘든 것은 스스로 갖는 두려움인 것 같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70~320야드까지 들쭉날쭉한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이승민은 아직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다. 전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같이 연습한 대선배 허인회(36·금강주택)로 부터 ‘힘을 120% 활용하지 못하면 진정한 프로가 되지 못한다’는 조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처럼 벌크업을 하는 웨이트는 불가능하다. 발달장애 특성상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만들어야 하는 고충이 있다. 어머니 박씨는 “어느 궤도에 들어서면 그 다음에 힘을 120% 발휘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고 했다.
어머니 박지애씨는 “승민이의 학습 능력은 뛰어나다”면서 “문제는 그걸 금세 잊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것은 그동안 몸으로 반응했다면 지금은 조금씩 머리로 생각해 행동한다는 점”이라고 웃어 보였다.
이승민은 KPGA코리안투어에서 개인 통산 4번째, 해외 대회를 포함해서는 5번째 컷 통과를 이뤄냈다. 모두 초청 선수로 출전해 거둔 결과다.
그랬던 그가 리래킹 상위 순위에 의해 자력으로 하반기 KPGA코리안투어 4개 대회(비즈플레이 전자신문 오픈, DGB금융그룹 오픈, 아일랜드 리조트 더 헤븐 오픈,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승민은 다음주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내달 11일부터 13일(한국시간)까지 사흘간 열리는 US어댑티브 오픈 타이틀 방어를 위해서다.
어머니 박지애씨는 “백투백 우승을 해야만이 우승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새길 수 있고 복사 트로피라도 소장할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승민이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잘 준비해서 발달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천안=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