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받는 사업이 총선 철에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총선을 앞둔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야는 예타 대상 사업의 총사업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추진하다 총선용이라는 비판에 법안 처리를 연기한 상태다.
24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기준 조정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는 2015년 1조4000억원에서 올해 22조원으로 증가했다. 예타 면제 사업 수는 같은 기간 13개에서 35개로 증가했다. 예타 면제 사업은 총선을 앞두고 크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21대 총선 1년 전인 2020년 예타 면제 사업은 31개, 사업비는 30조원을 넘겼다. 2019년에도 예타 면제 사업은 47개, 35조9000억원에 달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타 대상 사업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 사업 등이다. 예타 면제 사업 유형은 10가지 유형이 있는데, 모호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기준은 추상적 표현으로 만연한 예타 면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함에 따라’ 면제된 사업은 전체 면제 사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는 사업비 기준 92.6%가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함에 따라’ 면제됐고, 올해도 그 비중은 63.3%에 달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세진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재정경제팀장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부 스스로 예타 제도 자체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흐리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면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제도의 지속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는 지난 4월 예타 면제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총선용이라는 비판에 법안 처리를 연기했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은 1999년에 도입된 만큼 현재의 국가 경제 규모와 재정 규모의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다만 총사업비 기준을 1000억원으로 올리면 그만큼 경제성이 부족한 재정 사업이 우후죽순 생겨 심각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많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 면제 기준을 사업비로 규정하지 않고, 예산이나 국내총생산의 일정 부분 비율(%)로 정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며 “동시에 예타 면제 기준을 객관적 지표로 명확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