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는 복합위기의 탈출구 찾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성장 전망이 낮은 업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체질 개선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은 ‘릴레이 전략회의’를 열면서 해법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54조원, 17조원에 이르는 재고를 털어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았다. 판매 확대를 통한 실적 개선, 재고 감축이 시급하다.
삼성전자는 사흘 일정의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반도체·스마트폰 등의 사업 부문별 경영 변수를 점검 중이다. 한종희 부회장이 이끄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지난 20일 수원사업장에서 노태문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사장) 주재로 회의를 가졌다. 같은 날에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도 회의를 열고 하반기 반도체 업황을 살폈다. 21일엔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 사업부문 전략회의가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22일에 전사 회의를 개최한다.
SK그룹은 지난 15일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명이 참석하는 확대경영회의를 가졌다. 주제는 복합위기 대응 방안이었다. 최 회장은 “미·중 경쟁과 예상하지 못한 위기·기회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러 시나리오에 맞춰 조직과 자산, 설비 투자, 운영 비용 등을 빠르고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LG그룹은 지난달에 구광모 회장이 주재한 계열사별 전략보고회를 마쳤다. LG그룹은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새판 짜기’에 착수했다. LG화학은 주력 사업을 기존의 석유화학에서 3대 신사업(배터리, 친환경 소재, 신약)으로 교체하는 데 속도를 붙일 방침이다. 사업 재편에 따른 자산 매각과 인력 재배치에도 나섰다.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최근 임직원에 메일을 보내고 “한계사업에 대한 구조 개혁을 선제적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다음 달에 각 회사의 대표가 주재하는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진행한다. 해외 경영·판매전략을 살피고 대응책을 찾는 자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경제의 주력 성장엔진인 수출이 꿈틀거린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해 수출 실적으로 50만 달러 이상을 거둔 기업 2000곳을 조사한 결과, 올해 3분기 수출산업 경기전망지수(EBSI)가 기준선(100)을 넘는 108.7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수출 여건이 올해 2분기보다 나아진다고 기대하는 기업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 업종은 공급량 조절에 따른 가격 하락세 둔화, 수요 증가로 회복세에 진입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관건은 침체한 ‘대중(對中) 수출’의 반등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에 중국으로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5% 감소했지만, 전월(-23.4%)과 비교해 감소 폭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완화 조짐을 보이면서 대중 수출 회복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미국과 중국이 긴장 완화 제스처를 시작한 것은 한국 수출 등에 긍정적 요인으로 보인다”면서 “한국 기업도 실리적 관점에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양민철 김혜원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