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노출 탓” “술 취한 피해자도 책임”…왜곡된 통념 여전

입력 2023-06-21 11:42 수정 2023-06-21 14:07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5명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보는 등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만 19~64세 남녀 1만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이 조사는 성폭력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자 3년마다 실시되는 국가승인통계다.

성폭력 관련 인식과 통념을 살펴보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46.1%)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39.7%)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32.1%)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까지 허용한다는 뜻이다’(31.9%) 등 순이었다.

대체로 남녀 모두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동일 연령대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성폭력 관련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는 항목은 30대 남성(43.5%)에서, ‘피해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제로 성관계(강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20대 남성(27.7%)에서 ‘그렇다’는 응답률이 특히 높았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 항목을 보면 ‘밤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두렵다’(36.2%)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섭다’(30.8%) ‘평소 폭행·강도·절도 등 피해를 볼까 봐 걱정한다’(30.1%) ‘나도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가 유출돼 성범죄에 활용되고 있을까 봐 두렵다’(28.6%)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촬영됐을까 봐 두렵다’(25.5%) 등 순이었다.

두려움 관련 문항에서 남성 응답자는 10% 내외로 ‘그렇다’라고 답했지만 여성 응답자는 모두 30%를 웃돌았다. 특히 20~30대 여성은 모든 문항의 응답률이 여성 평균 응답률을 웃돌아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력 피해를 본 사람 가운데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여성 응답자는 3.2%, 남성 응답자는 1.4%만 이같이 답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로는 여성(73.3%)과 남성(77.4%) 모두 ‘피해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했던 경험을 묻는 항목에 남성 응답자는 모두 ‘없다’라고 답했고, 여성 응답자는 21.1%가 ‘있다’라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를 기준으로 경찰 수사에서 경험한 불편함의 내용을 보면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75.3%) ‘불쾌함·수치심을 느꼈다’(45.5%) ‘나의 피해를 사소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36.6%) 등이 꼽혔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 1순위로는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 마련’(16.7%)이 꼽혔다.

여가부는 올해 수사기관 업무담당자 대상 2차 피해 방지 교육을 지원하고, 성폭력 피해자 등이 디지털콘텐츠 및 기사 등으로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입는 2차 피해의 소송에 대해서도 무료법률 지원을 할 계획이다.

여가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성폭력 범죄의 신고 및 처벌에 대한 해외 입법 동향 등을 연구하고, 성폭력, 여성폭력, 가정폭력 실태조사 등 조사항목이 중복되는 유사통계를 통합·연계해 표본을 확대하는 등 내실화해 통계 품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