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생에서 전설로…최형우가 내놓은 1500번의 증명

입력 2023-06-20 23:01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최형우(가운데)가 2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4회초 투런 홈런으로 통산 1500타점을 달성한 직후 동료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꾸준함의 상징’ KIA 타이거즈 해결사 최형우(40)가 한국프로야구 41년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리그 최초로 통산 1500타점 고지를 밟으며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을 넘어 역대 타점 1위로 올라섰다. 프로에 발을 들인 지 21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최형우는 2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 4회 홈런으로 2타점을 거두며 팀의 6대 4 승리를 견인했다.

이날 전까지 통산 1498타점으로 이 감독과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라 있던 그는 경기 시작부터 방망이를 가볍게 돌렸다. 2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출루했다. 비록 후속타 불발로 득점엔 실패했지만 범상치 않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기대가 현실로 바뀌기까지 공 1개면 충분했다. 0-1로 뒤진 4회초 1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그는 한화 선발 한승주의 초구 시속 144㎞ 속구를 통타했다.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향하던 공은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가장 먼 가운데 담장으로 뻗어갔다. 중견수 문현빈이 펜스 플레이를 준비했지만 낙구 지점은 담장 밖이었다.

홈런 여부가 헷갈렸는지 2루 부근에서 속도를 늦추며 심판 쪽을 바라보던 최형우는 이내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의 올 시즌 9번째 홈런이자, 41년간 내로라하는 대타자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1500타점 고지에 깃발이 꽂히는 순간이었다.

최형우의 야구 인생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전북 전주에서 나고 자라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지명 6라운드 전체 48번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높지 않은 지명 순위를 반영하듯 2005년까지 1군 출장은 단 6경기뿐이었다.

4시즌 8타석 7타수 2안타. 이는 최형우의 1군 통산 성적이 될 뻔했다. 2005시즌 종료 직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선택한 입대는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신생 경찰청 야구단 소속으로 2군을 초토화했고 제대 후 친정 삼성의 부름에 응했다.

이후는 신화가 됐다. 2008시즌 타율 0.276에 19홈런 71타점을 올리면서 프로 입성 6년 만에 감격의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떠나기 전까지 9시즌 동안 연평균 26홈런을 기록하며 삼성 왕조를 이끌었다. 2016시즌 후 프로야구 최초로 100억원 시대를 열며 화려하게 고향 팀 KIA로 향했고 팬들에게 우승을 안겼다. 프로 자질을 의심받던 20대 청년은 오직 성적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국 야구사에 이름 석 자를 새긴 최형우의 승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팀 내 규정타석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높다. 홈런·타점은 팀 내 2위다. 최근 두 시즌 기대에 못 미치며 은퇴설까지 흘러나왔지만 회춘한 기량으로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있다. 최형우의 마지막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듯하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