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에… 한국서 일본산 철강 ‘조용한 공습’

입력 2023-06-21 07:19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생산한 스테인리스 냉연 코일 제품. 포스코 제공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한국 철강 산업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엔화 약세는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철강 시장은 한·일 양국의 대표적 ‘격전지’다. 지난달 초부터 내림세가 가팔라지기 시작한 원·엔 환율은 지난 19일 100엔당 800원대를 찍었다.

한 대형 철강사 관계자는 “엔저(엔화 약세)가 국내 철강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철강 기업들이 저렴해진 엔화를 무기로 삼아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은 철강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열연, 후판, 판재, 봉형강, 강관 등 거의 모든 철강 제품군에서 맞붙고 있다. 올해 초 일본에서 열연을 조달하기로 결정한 한국 기업의 관계자는 “일본에 주문하면 한국 기업에 주문할 때보다 납품까지 한 달은 더 걸린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엔저 효과까지 더해지는 걸 고려해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일본 철강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약진하는 건 숫자로도 확인된다. 21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특히 일본산 열연 수입량은 지난해보다 44.0%나 뛰었다. 하나증권 박성봉 연구원은 “일본산 저가 열연의 조용한 공습”이라고 했다.

일본 철강제품의 핵심 무기는 가격이다. 올해 1~5월 한국 시장에 들어온 일본산 철강재의 평균 수입가격은 t당 921달러다. 지난해보다 16.0% 낮아졌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평균 원·엔 환율은 지난해보다 3.9%(우리은행 기간별평균환율 기준) 하락했다. 일본 철강제품 가격의 하락 분에는 ‘엔저’ 효과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엔 환율이 당분간 현재 수준을 보일 것으로 관측한다. 일본 중앙은행은 금융완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인 시장 상황 모니터링 및 주요 고객사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엔저의 영향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