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와의 전쟁’을 선포한 금융감독원이 포부에 맞지 않게 예산 부족 문제로 냉가슴을 앓고 있다. 눈에 띄게 높아진 유료 리딩방 가입비 때문에 사실상 리딩방에 잠입해 조사해야 하는 암행점검이 어려워진 탓이다.
금감원은 이번 달부터 불공정거래 특별단속반을 구성해 연말까지 운영한다. ‘라덕연 사태’를 계기로 유사투자자문업자와 미등록 투자자문업체의 불법 리딩방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즉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리딩방에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암행점검도 실시하기로 했다.
암행점검은 불법 리딩방을 적발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꼽힌다. 수사권이 없는 금감원이 리딩방의 운영 실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도 하다. 위법행위 적발률도 높다. 재작년 유료 리딩방 40개를 암행점검했던 금감원은 23개 업체의 위법행위를 찾아낸 바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암행점검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급격히 오른 유료 리딩방 가입비 때문이다. 특히 고급 정보를 주겠다며 VIP, VVIP로 가입할 것을 유도하고 있는데 비용이 수백만원에 이른다. 금감원 관계자는 20일 “암행점검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돈이 들어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올해 암행점검 관련 예산은 1800만원 정도다. 유료 리딩방 가입비가 평균 1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현실적으로 18개밖에 들여다보지 못한다. 반면 불법 리딩방 관련 피해 민원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년 905건 수준이던 민원은 2021년 3442건으로 폭증했다.
금감원은 “필요하면 내부적으로 배정을 하든 금융위원회에서 주든 추가 예산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 내부에서는 “선제적인 예산 확충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시작부터 예산 부족이라는 허들이 놓인 상황에서는 암행점검보다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