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유럽에 80조 쏟아부은 인텔 “반도체 패권 되찾는다”

입력 2023-06-20 16:46
올라프 슐츠(뒷줄 오른쪽) 독일 총리와 팻 겔싱어(뒷줄 왼쪽) 인텔 최고경영자가 19일(현지시간) 독일 마그데부그크 공장 건설 합의서에 체결식에 참석했다. 인텔 제공

인텔이 TSMC, 삼성전자 등 아시아 기업에 빼앗긴 ‘반도체 1위’ 탈환에 시동을 걸고 있다. 반격의 거점은 유럽이다. 인텔은 일주일 사이에 독일 이스라엘 폴란드에서만 약 80조원 가량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생산역량 확대를 노리는 유럽연합(EU)과 아시아를 벗어난 생산거점 확보를 노리는 인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인텔은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주도 마그데부르크에 총 300억 유로(약 41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2곳을 짓기로 독일 정부와 합의했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당초 170억 유로 규모를 예정했으나, 더 늘렸다. 독일 정부도 인텔에 줄 보조금을 68억 유로에서 100억 유로로 상향 조정했다. 처음 계획보다 판이 더 커진 셈이다. 인텔은 이 공장에서 당초 구상했던 것보다 더 진보한 ‘옹스트롬(0.1나노미터)’ 공정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인텔 마그데부르크 공장 예상 전경. 인텔 제공

인텔은 이번 프로젝트에 ‘실리콘 정션(Silicon Junc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그데부르크 공장을 유럽에서 반도체가 오가는 ‘허브’ ‘통로’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인텔은 “웨이퍼부터 반도체 패키지 제품까지 유럽에서 균형 잡히고 탄력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아일랜드에서 웨이퍼 공장을 운영 중이고, 최근 46억 달러 규모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이스라엘에 250억 달러 규모의 공장 증설 계획도 발표했다.

인텔은 ‘유럽 반도체 생태계 구축’까지 내다보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월에 향후 10년간 최대 800억 유로를 투자해 유럽 각국에 반도체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역량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겔싱어 CEO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을 아시아에 빼앗겼다. 이를 되찼으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TSMC 등에 내준 반도체 패권을 탈환하기 위해 EU를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번 투자는 독일 역사상 외국기업 투자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첨단 기술 생산지로서 독일의 회복력에 중요한 발걸음이다. 독일과 유럽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마그데부르크 공장 1단계 건설 과정에서 7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약 3000개의 첨단 기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수만개의 추가 일자리 창출도 예상한다.

EU는 현재 9%대인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이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수급 문제를 겪으면서, 반도체 생산역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걸 체감해서다. 인텔, TSMC 등은 EU의 러브콜에 화답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