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조카주의 ‘백조의 호수’는 무엇이 특별할까?

입력 2023-06-20 14:17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c)JC Carbonne

‘백조의 호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발레의 대명사다.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가 됐다가 밤에는 다시 인간이 되는 오데트 공주와 그녀에게 매혹된 지그프리트 왕자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1895년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와 그의 조수인 레프 이바노프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안무하면서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프티파-이바노프 이후 수많은 안무가가 ‘백조의 호수’ 재안무에 도전해 왔다.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이 안무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재안무 된 ‘백조의 호수’는 기존의 안무를 토대로 하되 캐릭터의 심리를 부각하거나 결말을 바꾸는 버전부터 아예 이야기를 바꾸는 혁신적인 버전까지 다양하다.

프랑스의 대표적 안무가 중 한 명인 앙줄랭 프렐조카주도 2020년 ‘백조의 호수’ 재안무에 도전했다. 현대무용 안무가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스노우 화이트’ 등 내러티브가 있는 모던 발레를 종종 선보였던 프렐조카주는 이번에 원작을 현대 산업사회에서 환경 파괴로 희생되는 백조의 이야기로 바꿨다. 마법사 로트바르트는 부동산 사업가로, 마법에 걸린 공주 오데트는 환경운동가로, 왕자 지그프리트는 시추 장비 개발회사의 후계자로 등장한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c)Julien Bengel

프렐조카주 발레단은 ‘백조의 호수’를 가지고 오는 22~25일 LG아트센터 서울을 찾는다. 2019년 ‘프레스코’ 이후 4년 만이다. 일정상 무용단과 함께 오지 못하는 프렐조카주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프렐조카주는 이번 작품을 만든 계기에 대해 “201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작을 위촉받아 ‘유령(Ghost)’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백조의 호수’와 만나게 됐다. ‘고스트’ 이후에도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었는데, 이번엔 토슈즈 없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게 ‘백조의 호수’는 에베레스트산 같은 위대한 창조물 중 하나다. 안무가로서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에 도전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고스트’는 프티파가 예술적 망상에 시달리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네 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 속 백조 캐릭터와 현실을 오간다. 그는 자신이 재안무한 ‘백조의 호수’에 대해 “현대무용은 (발레와 달리) 토슈즈 없이 땅에 발을 디딘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팔을 쓰고 점프하는 방법들을 새롭게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에선 무용수들이 발끝으로 바쁘게 움직이면서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채 고난도 동작을 보여준다. 프렐조카주는 백조의 목과 머리를 형상화한 듯 손목을 90도로 꺾은 채 팔을 뻗고 춤을 추는 안무를 보여준다. 그는 “백조가 땅에서 쉬고 있다가 날아가듯 팔 동작과 점프, 몸을 일으키는 동작 등을 통해 ‘상승’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장면은 고전 발레 및 여성 무용수들의 클리셰를 모두 해체한다. 이것은 자유의 송가이기도 하다”면서 “프티파의 기본적인 구조에서 시작했지만, 문법이 다르다. 프티파에게 경의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작품을 재안무하면서 나만의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c)JC Carbonne

안무는 새롭게 창작했지만, 음악은 원작의 차이콥스키 ‘백조의 음악’을 90% 가까이 썼다.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인 바이올린 협주곡, 서곡, 교향곡을 추가한 뒤 ‘79D’라는 뮤지션이 새롭게 작곡한 현대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가미했다. 프렐조카주는 “차이콥스키 음악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들을 유지하고 싶었다. 다만 사운드를 추가해 좀 더 현대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백조의 호수’를 재안무하면서 환경 파괴 문제를 주제로 삼게 된 배경을 묻자 프렐조카주는 “딸들을 둔 아버지로서, 다음 세대와 그 이후 세대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진다”면서 “내 딸들이 살아갈 세상에 어떤 것을 물려주게 될지 궁금하다. 지구 온난화로 호수가 말라가고 있고, 최근 50년 사이에 800종의 동물이 사라졌다. 우리 아이들, 우리의 손주들은 백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피력했다.

프렐조카주는 최근 유럽에서도 인기가 있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화가 영화, 패션, 음, 그리고 춤을 통해 어떻게 국제적으로 확장됐는지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K팝에서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그룹의 공연에선 춤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