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건 때 압수 증거로 새 사건 수사한 기무사…대법 “위법”

입력 2023-06-20 14:09

과거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혐의 무관 정보를 삭제·폐기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사건 수사에 활용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군기누설·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는 2014년 방위사업청 발주 사업 관련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해외 방위산업체 컨설턴트 김모씨를 수사했다. 기무사는 김씨의 사무실·주거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고, 노트북·휴대전화·하드디스크의 각종 전자정보를 사본 형태로 확보했다. 법원은 김씨가 특수침투정, 소형무장헬기, 고공침투장비 등과 관련한 군 기밀을 누설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형은 이듬해 확정됐다.

기무사는 2016년 김씨 사건 압수물을 근거로 새 수사에 착수했다. 군 내부 실무자가 김씨에게 소형무장헬기 사업 관련 군 기밀을 누설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이유였다. 검찰에 보관돼 있던 김씨 사건 압수물을 다시 받아 내사를 진행했고, 이 정보를 토대로 A씨 관련 혐의를 선별해 새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다. 김씨 사건 압수물에 당초 김씨 혐의와 무관한 전자정보들도 혼재돼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 이메일 기록을 새로 확보한 기무사는 현역 군인인 A씨가 방산업체 관계자 부탁을 받고 군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를 입증해 기소했다.

1·2심은 모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핵심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된 만큼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법원도 원심 군사법원 판단이 옳다고 보고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압수를 완료하면 혐의 사실과 관련이 없는 전자정보(무관 정보)는 삭제·폐기해야 한다”며 “그런데 새로운 사건 수사를 한다고 무관 정보가 남아있는 선행 사건 압수물을 열람하는 것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지 않고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2차적으로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군 검찰 측 항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