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교육 억제 방안으로 이른바 ‘킬러문항’을 정조준한 이유는 이런 초고난도 문제가 대입 현장에서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으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사교육 열풍이 불도록 풀무질을 한다는 점에서 공정성 훼손 비판이 컸다. 하지만 정시확대 흐름과 의대 쏠림 현상 등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에 따라 수능 변별력도 중요해지면서 ‘필수불가결 영역’으로 취급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수능이 변별력을 잃을 경우 빚어질 혼란을 우려해 어느 정도 눈 감은 게 사실이었다.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수능 고득점은 현실적으로 킬러문항이 좌우한다. 수능 고득점자 분포가 사교육이 활성화된 지역과 거의 일치하는 이유다. 실제 2019~2022년 서울대 및 전국 의대 신입생 출신 지역 자료를 보면 서울대와 의대 입학생 5명 중 1명은 사교육 접근성이 좋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었다. 전국 기초지자체가 229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불균형이다.
다수의 고교는 이미 수시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전환된 상태다. 수능 위주의 정시에서 서울 등 대도시 사교육 특구 학생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도 전환의 이유였다. 학교에서 정시 준비반을 꾸리더라도 킬러문항을 집중 훈련해주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보다 불리한 게 현실이다. 충남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19일 “이것이 정시가 공정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킬러문항을 둘러싼 ‘이권 카르텔’ 문제가 입시 사교육 업계에서 거론된 지도 꽤 됐다. 킬러문항은 돈이 된다. 상위권 수험생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킬러문항으로 훈련을 받고 안 받고는 수능 시험장에서 차이가 작지 않다. 이 때문에 킬러문항 생산에 사교육 강사들은 물론 일선 학교 교사들도 암암리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돈다. 익명을 요구한 사교육 관계자는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논란 이후 문항 단가가 뛰었다. 국어 킬러문항 1개당 100만원을 불렀다는 교사 얘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킬러문항 외에도 수능에는 사교육 유발 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수험생들은 수능 전 6월과 9월 두 차례 모의평가를 치른다. 수험생들은 6월 모의평가 성적표를 들고 수시 지원 대학을 정한다. 9월 모의평가 결과는 수시 지원이 끝난 뒤 나온다. 가채점을 통해 어렴풋이 자기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시에서 합격할 대학 수준을 모의평가 결과로 판단한 뒤 수시 원서를 내는 구조다. 정보 하나가 아쉬운 수험생에게 9월 모의평가 결과를 주지 않고 수시 원서를 내도록 하는 건 사교육 컨설팅으로 수험생을 내모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수능 직후 대학별고사가 이어지는 점도 사교육 환경을 조성한다. 학생들은 수능 가채점을 토대로 대학별고사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수능 성적이 예상보다 좋아 정시에서 더 좋은 대학이나 학과에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 대학별고사를 보면 안 된다. 수시에서 한 곳이라도 합격하면 정시 지원 자격이 박탈되는 이른바 ‘수시 납치’ 제도 때문이다. 다만 성적표가 나오기 전이어서 대학별고사 불참은 일종의 ‘도박’이기도 하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현 대입 제도 자체가 수험생들을 불확실성의 연속에 놓이도록 하지만 너무 오래된 관행이다 보니 문제의식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교육 당국이나 대학 중심이 아닌 수험생 중심으로 다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