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라면값 인하’ 발언에 진짜 가격 내리나

입력 2023-06-19 17:34
19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라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인하’ 발언이 식품업계를 흔들고 있다. 라면업계는 19일 “물가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속내는 추 부총리의 발언에 압박감을 느끼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제 밀 가격 하락’ 외에는 가격 인하 요인이 없고, 원재료인 밀가루는 여전히 인상된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가 느닷없이 라면 가격 인하를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전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추 부총리의 발언이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당장 압박으로 다가왔다. 일단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진 건 사실이다. 지난해 국제 밀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후 위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까지 받으면서다.

그러다 전쟁이 길어지고 불확실성이 감소되면서 국제 밀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선물거래소(CME)에 따르면 지난해 5월 t당 419.22달러까지 치솟은 국제 소맥(밀) 가격은 지난 16일 기준 252.8달러(39.7%)까지 떨어졌다.

추 부총리의 발언 핵심은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라면 가격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로 풀이된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이 같은 해석에 난색을 표한다. 밀 가격은 내렸으나 라면의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은 내리지 않았다. 라면업계에서는 국제 밀 가격 인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밀가루 가격부터 내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제분업계는 최근 국제 밀 가격이 떨어졌다 해도 평년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밀가루로 가공하는 데 필요한 제반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당장 가격 인하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제 밀 가격은 2018년 t당 182.08달러, 2019년 182.08달러, 2020년 202.35달러였던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게 형성돼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할인마트에 밀가루 상품이 진열돼 있는 모습. 뉴시스

라면업계가 선뜻 가격 인하를 고려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부 원·부자재 가격은 오히려 올랐고,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 등으로 운영비 부담 또한 커졌다. 식품기업들은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하는데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는 것도 여전히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에 전분 가격이 60% 올랐다. 라면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국제 설탕 가격이 크게 뛴 것 또한 기업 전체에는 부담이 된다”며 “원재료 가격 변동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가격 인하를 섣불리 했다가는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라면업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0년 가격을 인하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가격을 내린 적이 없다. 13년 만에 다시 등장한 ‘라면값 인하’ 발언은 주식 시장에 악영향을 줬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라면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농심은 전장 대비 6.05% 하락한 41만1500원에 거래됐다. 삼양식품 주가는 7.79% 내린 10만5400원, 오뚜기는 2.94% 내린 42만8500원에 마감됐다.

고물가 부담을 1년 넘게 받고 있는 소비자들은 라면값이 조금이라도 내린다면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 송파구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모(55)씨는 “라면값 내린다고 살림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면 그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워낙 물가가 올라서 뭐든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