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억 혈세 쓰인 ‘짝퉁 거북선’…헐값 수모에 철거 수순

입력 2023-06-19 16:33
김태호 당시 경남지사가 2008년 6월 거제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거북선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경남도 제공

7번 낙찰 끝에 겨우 주인을 찾은 거북선이 입찰자가 인도하지 않아 철거될 처지에 놓였다.

경남 거제시 관계자는 19일 “거북선 1호(이하 거북선)의 입찰자가 아직 인도하지 않고 있다”며 “계약에 따라 오는 26일까지 이전하지 않으면 철거 수순을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입찰자는 지난 5월 16일 진행된 거제시 공유재산 매각 일반입찰에서 154만원에 해당 거북선을 낙찰받았다.

이 거북선은 제작 당시 사업비 명목으로 약 16억원이 투입됐다. 낙찰가 154만원은 최초 제작비와 비교하면 0.077%에 불과한, 그야말로 헐값에 매각된 것이다.

오는 26일까지 거북선을 인도해야 하지만 입찰자는 “인도 시기를 연장해달라”고 시에 통보한 상태다. 낙찰 대금은 모두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입찰자가 거북선을 이전하려는 장소가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이라 부지 용도변경 허가에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많아 계약에 따라 26일 이후 철거를 시도할 예정이다.

거제 거북선은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이 과거 경남지사 시절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순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 완성됐다.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 크기의 3층 구조로 제작됐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을 재현해 ‘1592 거북선’으로 불렸다.

거제시는 거북선 제작 당시 국내산 소나무인 ‘금강송’을 재료로 썼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후 제작 과정에서 저급품인 미국산 소나무를 섞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른바 ‘짝퉁 거북선’ 논란이 일었다.

계약과 달리 임의로 수입산 목재를 쓴 거북선 건조업체 대표는 2012년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는 도민 앞에 나서서 사과했다.

또 방부 처리를 소홀히 해 목재가 심하게 부식되거나 뒤틀리는 현상이 반복됐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때는 거북선의 꼬리 부분이 파손돼 폐기 처분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유지·보수에만 수억원을 써온 거제시가 결국 매각을 시도했지만 거북선은 7번이나 낙찰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